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주민투표를 통해 매듭지어졌다. 방폐장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주민 또는 국민의 참여를 배제하고 그들의 대표만으로 공공 의사결정을 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민주화 이후 각종 시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대를 ‘참여민주주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가 잘못 정착될 경우 우리 사회는 온갖 공공 갈등과 세력 간 각축으로 멍들고 말 것이다. 참여민주주의가 잘 정착하고 있는가를 나타내주는 척도의 하나가 시위 현장이다.
폭력을 동원하는 격렬한 시위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불의에 저항하는 의기의 표현으로 국민의 심정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 시대의 시위는 시위자들의 상대적인 이익과 의견의 표출 활동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시위와 시위에 대한 대응 방식에 대해 고언을 드리고자 한다. 우선 시위대는 시위가 자신들의 주장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른 사회구성원이나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자율적으로 시위 현장을 관리해야 한다. 또한 시위로 인한 사회적 피해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편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무(無) 최루탄 원칙 등 인내하는 대응 방식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시위대가 시위를 통해 적절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가 다른 사회구성원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했을 경우에는 철저히 그 법적 책임을 추궁해야 할 것이다.
시위의 의미와 대응 방식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폴리스 라인’(사건현장 보호나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노란색 띠 등으로 만든 경계선)의 활용이다.
폴리스 라인은 시위대의 자율의 한계선이자 시위대의 보호선이며 공익의 방어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위대의 폴리스 라인 준수는 시위대의 자율적 현장관리의 성공을 의미함과 동시에 경찰의 폴리스 라인 설정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폴리스 라인이 참여민주주의 시대 시위자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잘 보호하면서도 시위대로부터 다른 사회구성원과 공동체의 이익을 지켜내어 참여민주주의 시대의 시위 문화를 잘 정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유환 이화여대 법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