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설] 윤이상 음악 포용할 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설] 윤이상 음악 포용할 때

입력
2005.11.04 00:00
0 0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의 10주기 추모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국제 추모음악제가 평양ㆍ베이징ㆍ서울ㆍ통영에서 차례로 열렸고, 5일 베를린 음악회에서 끝난다.

3일 서울 조계사의 추모식에는 여야 정치인과 경제인, 불교ㆍ기독교 대표, 한ㆍ독 음악인 등이 대거 참석해 고인의 예술과 삶을 기렸다. 원택 스님 등의 추도사처럼 분단시대의 민족 지도자로서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 산 그의 생애가 올바로 기려지고, 그의 음악이 활발히 평가돼야 할 것이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에서 공부했고 항일운동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광복 후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유럽으로 건너가 독자적인 작곡세계를 펼치며 독일에 정착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베를린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남북문화교류의 첫 장을 연 범민족통일 음악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국의 외면 속에 그는 귀국의 꿈도 못 이루고 베를린에서 쓸쓸히 세상을 떴다.

그는 불우한 냉전시대의 희생자였으나, 분단체제와 이념을 넘어서는 그의 음악세계는 세계적 평가를 받았다. 칸타타 ‘나의 국토, 나의 민족’과 오페라 ‘심청’, ‘뤄양(洛陽)’ 등 동양적 음악사상ㆍ연주에 서양 작곡기법을 융합한 그의 음악은 독창성을 이루었다. 북한은 1984년부터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설립하고 매년 윤이상 음악회를 열어 왔다.

반면 남한에서는 통영국제음악제의 하나로 ‘윤이상 음악의 밤’이 개최되는 등 소극적이었다. 10주기를 계기로 이 세계적 거장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그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연주되는 포용력이 발휘되었으면 한다.

국가정보원에서 과거 중대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에 착수했으니 결과가 나올 것이다. 결국 동베를린 사건은 이념적 분단 시대가 남긴 상처다. 그의 삶의 궤적은 이념갈등은 짧고 민족과 예술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