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개업을 준비중인 이모(42)씨는 최근 거래은행 직원이 엔화대출을 받아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대출금리가 연 2.5%에 불과한데다,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높아지고 있어 나중에 갚아야 할 원금도 줄어들 거라는 얘기였다.
1억원을 1년간 대출 받아도 갚아야 할 이자는 250만원뿐이고, 여기에다 원ㆍ엔 환율이 1년간 2.5%만 떨어져주면(원화가치 상승) 대출 원금이 1억원에서 9,750만원으로 줄어든다. 이자부담이 250만원이지만, 원금이 250만원 줄어 공짜로 돈을 쓸 수 있는 셈이다.
국내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원ㆍ엔 환율 900원(100엔당)선이 깨지는 등 엔화 대비 원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저리의 엔화대출에 대한 문의가 각 은행마다 부쩍 늘어났다.
엔화대출은 한마디로 대출을 갚을 때 원ㆍ엔 환율에 따라 대출원금이 달라지는 상품. 일본의 저금리로 금융기관의 엔화 조달 금리가 낮기 때문에 금리도 2.5% 내외로 원화 대출과 비교하면 가격이 절반도 채 안 된다.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환차익(원금 감소)과 금리 차익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실제 1~2년 전 엔화대출을 받아 쓰고 있는 사업자들은 돈을 빌리고서도 돈을 벌고 있다. 3일 기준으로 원ㆍ엔 환율은 100엔당 892.96원. 1년전 1,040원하던 때 대출을 받았다면 대출원금이 14% 정도 줄어든 셈이다.
1년 전 3억원을 대출 받았을 경우 이자로 750만원 가량 냈겠지만, 대출원금은 2억6,000만원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물론 환변동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대출원금의 3.0~3.5%(한ㆍ일간 금리 격차)되는 선물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지만, 선물환에 가입하지 않은 고객들이 더 많다.
이 때문에 각 은행에는 기존 엔화대출을 상환하거나 원화대출로 전환하겠다는 문의도 많고, 신규로 엔화대출을 받겠다는 상담도 급증하고 있다.
주가가 급등했을 때 이익 실현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그때서야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10월말 현재 엔화대출 실적이 1,389억5,000만엔으로 9월보다 4억1,800만엔 늘었다. 하나은행도 7~9월에만 27억5,800만엔 늘어났다.
엔화대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법 대출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대부분 은행들이 규정에 따라 기업과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의 시설자금 및 운영자금 용도로 국한해 엔화대출을 하고 있으나, 일부 개인들의 경우 실제 사업은 하지 않고 개인사업자 등록증만 발급 받아 엔화대출을 받고 있는 것. 실제 이런 자금의 상당수가 부동산 투기자금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시점에서 엔화대출을 받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100엔당 890원 수준의 환율은 사상 최저치로, 바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시중은행 관계자는 “원ㆍ엔 환율이 900원 이하로 지속되기는 어렵다”며 “지금 신규로 엔화 대출을 받는 고객들은 나중에 상환할 때 대출 원금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에서 상투 잡는 식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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