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이스터섬은 거대한 석상으로 유명하다. 키가 4, 5㎙서부터 심지어 20㎙가 넘기도 하고, 무게도 수십톤에서 수백톤에 이르는 거대 석상들이 섬 곳곳에 널려있다. 구전과 18세기 초 유럽인의 방문기록에 따르면 이들 석상은, 900년께부터 이곳에 거주한 폴리네시아인들이 만들었다.
거석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구와 식량이 뒷받침돼야 했다. 주민들은 농지개간을 위해, 땔감을 조달하기 위해 숲을 파괴했다. 삼림이 사라지자 살코기를 제공했던 야생 짐승 또한 자취를 감췄다.
토양이 침식되고 곡물 생산이 급감했다. 기아 탈출을 위한 전쟁이 일어나고 식인 풍습도 생겼다. 심혈을 기울여 쌓은 거석상들도 하나씩 쓰러졌다. 곤궁에 빠져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우방도 하나 없었다.
중앙아메리카 마야문명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야 유적의 하나인 온두라스의 코판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농사를 지은 곳은 골짜기의 저지대였다. 주민이 늘자 사람들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주민이 한때 인구의 41%나 됐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골짜기로 내려왔다.
땔감, 건축목재용으로 나무를 마구 베 숲이 사라지고 언덕에 침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좁은 골짜기로 사람이 몰리면서 땅 싸움이 빈발했고 으레 전쟁으로 확대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까지 잦았다.
750~900년 2만7,000명이던 인구가 950년에는 1만5,000명으로 줄었고 1250년에는 마침내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가용 자원을 넘어선 인구 증가, 삼림 파괴와 침식, 사용 가능한 농지의 감소, 전쟁 등이 몰락의 주 이유였다. 지도층은 위기를 극복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남태평양의 핏케언, 헨더슨, 망가레바는 이웃한 섬이다. 가장 큰 섬 망가레바에서 인구가 늘자 경작지 확보를 위한 삼림 파괴가 시작됐다. 섬에는 커누 만들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았다. 토양 침식과 어획량 감소로 내란과 기아가 섬을 휩쓸었다. 하지만 더 큰 불똥이 튄 곳은 핏케언과 헨더슨이었다.
두 섬은 농산물, 기술 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망가레바에 의존하고 있었다. 망가레바와의 교역이 생명줄이었다. 생명 유지의 끈이 끊어지자 두 섬은 사람이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망가레바는 그래도 인구가 많아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
‘문명의 붕괴’는 이스터섬, 마야처럼 과거의 문명사회가 몰락한 이유와, 거기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담은 비판서이자 미래에 관한 보고서이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퓰리처상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책이 보여주는 문명 붕괴의 사례는 여럿이지만 그 과정과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 변화,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우방의 협력 감소, 사회 문제에 대한 구성원의 위기 대처 능력 저하 등이 붕괴의 주요 이유로 제시된다. 그 가운데서도 그가 특히 걱정스러워 하는 것은 환경 훼손이다.
책은 문명 붕괴의 가능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고 경고한다. 세계인구의 5분의 1이 사는 중국의 환경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매년 10%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취를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환경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생물의 종 감소, 경작지 감소, 사막화, 습지대의 상실, 목초지의 황폐화, 염화, 토양 침식, 물 부족, 수질 악화 등 한 둘이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겉으로 보기에는 환경이 풍족해 보이지만, 삼림자원과 수산자원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다.
저자가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현실을 우려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다름 아니다. 지구촌으로 좁혀진 현대에서 한 사회가 붕괴 조짐을 보이면 이는 곧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전세계적인 붕괴의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고 저자가 걱정하는 것도 그 같은 이유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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