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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박금산씨의 첫 소설집 '생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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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박금산씨의 첫 소설집 '생일 선물'

입력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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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등단한 소설가 박금산씨의 첫 소설집 ‘생일 선물’이 나왔다. 그는 이 소설집에서 어두운 기억으로 고통 받는 존재들의 어긋나고 뒤틀린 욕망의 심연을, 그 욕망들이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귀결을, 좌절한 욕망의 상처들을 다양한 서사를 통해 제시한다.

등단작인 ‘공범’(중편)은 노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보험설계사였던 어머니는 보험 상품에 자신의 몸을 얹어 팔거나 가난한 이웃들을 등치며 돈을 번다.

그 돈으로 공부해 출세한 ‘나’는 모종의 공범의식에 시달린다. 늙어 치매성 착란에 걸린 노모 때문에 낯뜨겁고 고통스러운 일상이 이어지는데, 별거중인 아내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고백을 해오고, 홧김에 그는 곁에 있던 어머니를 살해한다. 서사는, ‘나’가 고향 야산에 어머니의 시신을 유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무사시(無詐猜)’라는 몽환적인 공간에 들르면서 극적으로 분기한다. 그 곳은 ‘당신은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뒤를 잘 보고 오셨습니까’라는 안내판이 이끈 ‘속임과 새암이 없는 마을’이다. 그 곳에서 그는 “정말 잊고 싶은 기억, 그 기억만 없으면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과거”에 대한 고백을 강요 당한다.

고백의 대가는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 마을의 존재들은 “죄의식마저 쓸데없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욕망이 없어지면 죄도 없어지고 과거도 사라진다”고 믿는 사제들이다. 소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의식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의 모습을 냉혹하게 그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욕망의 무화(無化)란 꿈처럼 아득한 이야기다. 욕망은 “만지면 안고 싶고, 안으면 먹고 싶고, 점점 더 깊숙한 걸 느끼”(13쪽)게끔 스스로를 부풀리다 끝내 ‘권태’같은 흔적을 남긴 채 터져버리는, 다루기 힘든 본성의 괴물이지 않던가.(‘맹인식물원’)

‘생일 선물’은 기억의 낳는 죄의식의 고통과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비극적 얼크러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나‘는 조각가다. 소조와 달리 조각은 “한번 깎아내면 다시 붙일 수 없기에… 기다림의 여지가 없는 이별과 같”은 장르다.

그래서 “초상 조각은 내 안에서 그 사람(객체)를 지우는 일”이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이별”이기 때문에 “(나의) 눈은 정 끝에서 피어나는 형상에 가 닿지 않고 언제나 정을 맞고 떨어져 나가는 돌조각에”(49쪽) 머문다. 한편 ‘나’의 동생은 사진작가다.

그는 시력을 상실해가는 엄마의 재촉으로 늦은 밤 귀경 기차를 탔다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끝내 자살을 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자신의 ‘사진’이 ‘눈 먼 엄마’에게 소용되지 않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엄마는 죄의식을 느낀 나머지 동생의 죽음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동생의 주검을 조각해 만져보임으로써 죽음을 승인 받고자 한다. 하지만 나의 의도 역시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결여’로 동생의 죽음을 포장한 그 작품으로 데뷔하겠다는 야심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시력 등 감각에 장애를 겪는 이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작가는 과거의 기억과 욕망을 변주하면서 그 장애를 결핍의 고통을 부각하는 설정으로, 대체 감각의 밀도와 순도를 고양하는 장치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자칫 작위로 읽힐 수 있는 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 설정과 비극적 상황들을 작가는 담담한 화법과 흐트러짐 없는 호흡으로 자연스레 이어놓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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