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제329호) 한 마리가 또 다시 농민이 설치해 놓은 덫에 걸려 희생됐다. 일부 환경단체는 방사된 곰들이 자연 적응에 실패해 잇따라 희생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이벤트성 반달곰 복원사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반달곰 복원사업이 위기에 처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관리팀은 3일 오전 11시께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저수지 오른쪽 밤나무과수원 인근 야산에서 23개월짜리 북산한 반달가슴곰 수컷 ‘장강21’이 올무에 걸린 채 발견돼 관리소로 옮겨 치료하던 중 13시간여만에 죽었다고 4일 밝혔다.
발견 당시 장강21은 1.5㎙ 크기의 통나무에 부착된 멧돼지 포획용 올무에 하반신이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탈진한 상태였다. 주변 나무에는 장강21이 발톱으로 긁고 물어뜯은 흔적 등이 남아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사고 경위에 대해 전남 구례경찰서에 수사를 의뢰, 밤나무과수원 주인 정모(53)씨가 8월 멧돼지에 의한 밤나무 피해를 막기 위해 올무를 설치한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8월 7일에도 북한산 반달가슴곰 암컷 ‘랑림32’가 밤나무농장 주인이 설치해놓은 올무에 목이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이로써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위해 방사된 곰의 수는 북한산 6마리와 러시아 연해주산 11마리 등 17마리로 줄었다.
장강21은 4월 북한 평양중앙동물원에서 반입한 암ㆍ수 반달가슴곰 8마리 중 1마리로 71일간 자연적응훈련을 거친후 7월 1일 귀에 전파발신기를 부착한 채 지리산 남쪽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에서 방사됐다.
장강21은 이후 동료 반달곰들과 헤어져 혼자 서식하며 활동하다 10월 20일께 국립공원구역 밖으로 벗어났다가 반달가슴곰관리팀에 의해 공원구역 내 왕시리봉 쪽으로 이동조치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장장21이 10월 28일까지 왕시리봉과 문수저수지 인근 야산에서 활동하다 올무에 걸린 것으로 추정했다. 공단측은 10월 29일부터 전파발신기에서 신호음이 약해지면서 위치 변화가 없는 비활동성 모드가 감지되자 추적에 나서 3일 올무에 걸린 장강21을 찾아냈다.
환경부는 장강21, 랑림32의 유사사례 방지를 위해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불법밀렵도구 단속 및 수거활동을 벌이는 한편 2008년까지 방사 곰을 30마리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반달가슴곰 복원사업과 관리대책이 방사 최적지와 자연적응 가능성, 인명피해 방지 등에 대한 연구는 뒤로 한 채 단지 ‘곰 숫자 늘리기’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립공원시민연대 이장오 사무국장은 “지리산은 곰 활동영역 등을 감안할 때 서식지로 부적합할뿐 아니라 내년부터는 반달가슴곰으로 인한 인명 피해까지 우려되는 만큼 방사 위주의 복원사업을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례=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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