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9,000억원의 감세를 공언한 한나라당이 고민에 빠졌다. 세금을 깎겠다고 호언할 때 까진 좋았는데 막상 그에 상응해 새해 예산을 줄이려다 보니 여기 저기서 반발이 튀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정지역 예산을 집중적으로 깎으려 한다는 소문까지 나면서 지도부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3일 당 상임운영위에서 원희룡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이 8조9,000억원의 예산을 삭감할 것 이라고 하니까 호남지역에선 광양항 개발과 광주 전남지역 문화 사업 관련 예산 등을 집중 삭감할 것으로 잘못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 정책위는 1일 감세안에 맞춰 8조9,000억원의 예산안 삭감 가이드 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원 최고위원은 이어 “호남에 그간 공을 들였는데 공든 탑이 무너지게 생겼다”며 “이런 오해가 불거진 것은 당의 전략적 미숙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강재섭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감세를 8조9,000억원을 한다고 하니 일부 언론에서 예산도 무조건 8조9,000원을 삭감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 잘못 보도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는 “감세도 8조9,000억원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지만, 모두 관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도 “호남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숙원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고, 올해 예산에 반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줄일 예산이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8조9,000억원의 예산 삭감 목표치를 정했던 서병수 정책위 부의장은 “감세를 하더라도 공적자금 회수 등으로 수입을 증가시키고, 불필요한 정부의 씀씀이를 대폭 줄여 목표치를 달성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예산 심의에 들어가면 의원들부터 자기 지역 예산 챙기기에 경쟁적으로 나설 것이다. 또 실제로 예산 칼질에 나서면 지자체의 불만도 쇄도할 것이다.
여기 챙기고, 저기 눈치보다 보면 예산 삭감은 용두사미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감세도 탄력을 받기 어렵다.
당내에선 “감세는 예산 삭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예산 삭감에 대한 사전 논의 없이 감세 규모부터 공언하고 나선 게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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