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반도 강산은 태백의 줄기를 타고 오색 단풍의 눈사태가 남하하는데, 이번 주에는 내장산을 덮친다든가? 꽃도 잠시이지만 낙엽은 더욱 잠시이니, 땅에 떨어지는 것들이 원하는 것은 눈부신 햇살보다도 사람의 눈길과 발길이 아닐는지?
허공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언젠가는 떨어지고 쌓이는가? 꽃도 낙엽도, 눈도 먼지도. 그대 눈 속을 나는 새는 언젠가는 내려앉아야 한다. 나래를 접고 생각해보면, 꽃이나 낙엽, 눈이나 먼지 등은 시간의 각기 다른 모습일 뿐. 시간의 눈으로 보면 이슬도 거미줄도, 바위도 파도도 모두 시간일 뿐이다.
산을 오르면서도 우리 모두는 끓임 없이 낙엽처럼 낙하하고 있다. 다만 현기증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쌓인 수많은 무덤이 소복한 먼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산허리에 잘 가꾸어진 묘들도 머지않아 눈처럼 녹아버릴 것이다. 하물며 며칠이나 가겠는가, 저 타오르는 단풍의 불길이?
눈부신 은행나무 숲 속을 즐겨 걷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도 함께 떨어져 어느덧 쌓인 것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시간의 각질에 달라붙어 영원토록 살 것만 같았던 것들이 한줄기 찬바람에 어렴풋이 제정신이 든 것일까? 부채 모양의 잎사귀가 바람을 일으킨다. 그리고 골짜기를 메운 사람들이 그 바람을 따라간다, 배낭을 멘 채로. 죽음의 잔치 속에 희희낙락하면서.
하지만 카뮈의 희곡 ‘오해’에 나오는 잰의 말처럼, 가을은 “제2의 봄”일는지 모른다. 화려한 단풍이 마치 봄날의 꽃들을 흉내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낙엽 같은 인간도 제2의 봄이, 나이 든 젊음이 가능한 것 아닌가?
과연 인간의 삶도 벼농사처럼 이모작이 가능할까? 두 번 필 수는 없을까, 아침은 나팔꽃으로, 저녁은 달맞이꽃으로? 만일 사오십 대의 무르익은 낭만이 십 대의 싱싱한 젊음을 압도할 수만 있다면. 저들은 주장한다.
장엄한 석양이 눈부신 해돋이보다 아름답다고. 등산도 좋지만 하산은 더욱 좋다고. 가을 단풍이 오히려 봄여름 꽃보다 아름답다고. 겨울에 가선 눈꽃이 세상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다고 우길는지 모르지만.
단풍과 노을은 모든 존재들이 타고난 천연색이다. 젊음의 녹음이 벗겨지면 드러나는 석양의 창백하고도 붉은 속살 말이다. 아름다움이 본래 서러움일 줄은! 떨어진 단풍 잎 속에 너무도 많은 것을 본 하루는 온몸이 솜사탕 같고 서럽도록 아름다웠다.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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