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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제는 한강이다?

입력
200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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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서울로 이사 올 때 한강철교에서 내려다 본 드넓은 모래밭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말로만 들었던 해수욕장이 눈 앞에 펼쳐진 줄 알고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금새 그 곳이 바다가 아니라 한강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당시 한강은 노량진과 흑석동쪽에 붙어 물줄기가 가느다랗게 흘렀을 뿐 나머지는 온통 백사장이었니 착각이 무리는 아니었다.

●개발로 사라진 넓은 백사장

여름철 한강 백사장은 서울시민의 휴식처였다. 바캉스가 따로 없던 시절 피서지로는 그 만한 곳이 없었다. 동부이촌동 뚝섬 광나루 등지에는 피서객들로 미어졌다. 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가 숲을 이뤘던 뚝섬은 가장 인기 있는 장소였다.

100만평에 달하는 모래벌판이 사라진 건 1960년 말과 80년대 초 두 차례 진행된 한강개발 때문이다.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은 강변제방도로를 만들면서 기존 제방과의 사이에 땅이 생긴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한강에서 모래와 자갈을 퍼올려 제방을 쌓고 택지를 조성해 매각하면 엄청난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후 그 많던 모래는 동부이촌동과 서빙고동, 압구정동, 반포동, 여의도 아파트단지 밑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군데군데 남아있던 것이 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 을 진행하면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 서슬 퍼렇던 시절 올림픽 서울 유치가 결정되자 전두환 대통령이 “한강의 골재와 고수부지 활용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니 모래가 씨가 마른 건 당연했다.

그래선지 한강하면 친근하고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왠지 서먹서먹하고 거부감이 든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사라지고 회색 콘크리트가 강을 뒤덮은 때문일까. 강변을 따라 병풍처럼 들어선 고층아파트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경사진 호안 블록에 발을 디디면 물로 빨려 들어갈 듯 불안하다.

체육시설과 공원은 도로로 차단돼 접근이 쉽지 않다. 가끔씩 승용차를 타고 다리 위를 오가다 힐끔 쳐다보게 되는 한강. 강변에 모래라도 남아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한결같다.

조만간 한강이 다시 요동 칠 모양이다. 내년에 실시되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예비 후보들이 너도나도 한강개발을 언급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효과에 영향을 받은 터일 것이다.

한강변에 모노레일을 설치한다, 수상교통을 활성화한다, 한강변 시멘트 블록을 해체한다, 강변도로를 인공지반으로 덮어 공원을 조성한다, 강남북 연결 보행자 전용다리를 만든다, 중랑천을 ‘서울의 센강’으로 만든다 등등. 한강(漢江)을 한강(韓江)으로 바꾸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이쯤 되면 누가 시장이 되든 한강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청계천 개발로 톡톡히 특수를 누리고 있는 이 시장도 내친 김에 한강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오페라하우스 건립 등 노들섬(중지도) 문화단지 조성계획을 밀어붙이더니, 얼마 전에는 서울과 부산을 내륙으로 잇는 경부운하 건설을 끄집어냈다.

개발공약 만큼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좋은 소재는 없다. 당장 눈에 결과물이 보이니 효과도 그만이다. 덩치가 크면 클수록 약발이 세게 먹힌다. 새만금이 그렇고, 행정수도 이전이나 청계천복원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조금만 길게 보면 개발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원형대로 복구한다며 다시 사람의 손때를 묻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완공이후 연일 수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된 청계천을 거닐다 보면 인공의 냄새가 너무 진하다. 엄밀히 말하면 청계천 복원은 인공적인 하천을 조성한 또 다른 개발이다. ‘자연의 상품화’ 또는 ‘자연의 자본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신개발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환경학자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지 만은 않다.

●선거에 이용되어선 안돼

‘물을 다스리는 사람이 천하를 얻는다’는 말에 솔깃한 정치인들에게 한강개발은 마지막 남은 대형 프로젝트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강을 엔지니어링의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 정권의 실패를 상기해야 한다. 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서울시장과 대선가도의 발판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한번 잘못된 개발은 영영 돌이킬 수 없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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