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1970년대 말, 80년대 초는 ‘그때 그 사람들’에서처럼 정치적 시공간이기도 했고, ‘쇼쇼쇼’에서처럼 촌스럽게 희화화한 시절이었다.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하는 ‘사랑해, 말순씨’와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의 그 시절은 암울하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난다.
‘사랑해, 말순씨’는 엄마에 대한 미움과 화해를 통해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고, ‘소년, 천국에 가다’는 어느날 갑자기 어른이 된 소년이 평소 소원대로 만화방 아줌마와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두 영화는 모두 성장이라는 코드로 시대를 풀어간다. 처자식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중동으로 떠난 아버지, 또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민주화 운동을 하다 투옥된 아버지 등 여전히 아버지가 집을 떠나 있던 그 시대, 아이들이 성장은 당연히 어머니의 책임이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사랑해, 말순씨’에서처럼 무거운 가방을 들고 화장품 외판원 일을 다니느라 교양과는 거리가 먼 무식한 아줌마가 되고,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처럼 시계수리라는, 전혀 여성적이지 않은(물론 당시로서는) 일까지 마다 않는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쑥쑥 커 나간다. 두 영화는 시대의 폭압을 직접 건드리기보다는 소년들의 성장통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당시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과 80년 전두환 집권 사이를 배경으로 하는 ‘사랑해, 말순씨’에는 특히 그 은유가 잘 녹아 들어 있다. 광호(서재응)는 아버지가 없어도, 친구와 서먹해도, 엄마가 아파도, 도무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아무데도 정을 붙이지 못한 채 그저 부유할 뿐이다.
마치 그 시대처럼. 광호의 주변 사람들, 다운 증후군을 앓다 결국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동네 친구 재명이나, 예쁘고 착하지만 ‘시골 출신’이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은숙(윤진서) 등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마이너들이다.
미혼모 엄마를 둔 까닭에 미혼모 남편이 되는 게 소원인 ‘소년 천국에 가다’의 네모(박해일)에게서는 천진난만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빨리 나이 들어, 엄마와 같은 처지인 미혼모 부자(염정아)의 남편이 되는 게 소원인 네모의 이른 성장도 비정상적인 그 시절을 상징한다. 두 영화 모두 그 시절에 대한 기존의 도식적 접근에서 벗어나, 실제 당대를 살았던 평범한 이들의 시각을 담고 있다.
당시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소품들은 두 영화가 주는 1차적인 즐거움이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방문판매를 하던 화장품 외판원서부터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병 우유, 세탁조와 탈수조가 분리돼 있던 백조세탁기, 샤파 연필깍기 등에 이르기까지…. ‘사랑해, 말순씨’는 3일, ‘소년, 천국에 가다’는 11일 개봉. 12세.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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