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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비평] 재선거 보도의 엉뚱한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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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비평] 재선거 보도의 엉뚱한 파장

입력
200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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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6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선거의 파장이 심상치 않게 번지고 있다. 네 지역에서 모두 승리한 한나라당은 축배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지도부가 총사퇴 했고, 책임 공방을 놓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간의 갈등은 이상한 방향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파워 엘리트에 대한 시민의 의견과 정서를 반영하는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통로이다. 선거 과정은 주민들이 지역의 숙원 사안을 정책 이슈로 만들어 내고 이를 가장 잘 수행할 대표를 뽑는 대의적 민주 절차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앞으로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것 같지 않다는 주민들의 불신의 결과이다. 그만큼 정당이나 정치 후보는 선거 결과에 대해 상당 부분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정당이나 정치인이 어떤 주민의 어떤 의사를 얼마만큼 대표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를 따지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선거를 통해 정치가 더욱더 민주적으로 될 수 있다.

10ㆍ26 재선거는 실시 이전부터 정치권과 언론에 의해 선거의 본래 의미가 확대 해석되면서 파행을 예고했다. 대구 동을, 울산 북, 경기 부천 원미갑, 경기 광주 등 불과 네 군데 지역 대표 의원을 뽑는 선거는 어느새 각 정당이 총동원되는 전국 선거로 비화했다. 정치권과 언론은 네 군데 재선을 마치 집권세력의 중간평가 기회로 규정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선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재선거가 전국 선거로 정의돼 버린 이상, 선거 현장은 각 정당 지도부의 사활을 건 싸움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선거의 공과가 지도부로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 중앙의 당대표와 간부들이 대거 지원유세를 하게 되고, 언론이 이를 다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지방선거는 이미 중앙선거가 돼 버린다.

엄연히 지역 대표 의원을 뽑는 선거인데도 언론 보도에서는 지역 이슈를 찾아 보기가 힘들다. 온통 중앙당 입장에서 바라본 선거 판세가 보도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은 중앙당 지도부 인사들의 유세 장면을 주로 보여주고 지역 후보는 마치 스타 정치인에 기생하는 주변 정치인처럼 돼 버린다.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재선거 보도는 선거 결과 해석에서도 시민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불과 네 군데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4 대 0, 3 대 1 과 같이 한쪽의 전승 또는 압승의 경우가 쉽게 나올 수 있다.

이런 재선의 결과는 그러나 마치 전국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한쪽 정당이 모조리 패한 것처럼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 주어 패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겨 준다.

더욱이 선거가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 게임처럼 보도되면서 선거구마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적게는 2%, 많게는 8% 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도 선거 보도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패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민의는 고려될 여지가 별로 없다.

이처럼 일부 지방선거가 전국 선거로 비화되고 스포츠 게임처럼 인식되는 것은 지역 언론보다 전국 언론 위주로 구성된 한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에서 비롯됐다.

전국 언론으로서는 지방선거가 지방선거로 남아 있으면 그만큼 기사의 가치도 떨어진다. 따라서 전국 언론은 지역에 국한되는 지역의 후보와 지역의 정책 이슈를 다루는 본연의 선거 보도 대신 지방선거를 중앙당이 챙겨야 하는 전국선거로 끌어 올리고, 전국의 독자와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거 판세 보도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재선거는 지역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적 절차의 의미는 사라지고, 대신 전국적 정파간의 세력 다툼의 장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떤 정파든 패자가 됐을 때 근거 없고 엉뚱한 책임을 져야 하는 억울함을 면할 길이 없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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