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학교도 못 다니고, 결혼할 때는 학력도 숨겨야 했지요. 50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다시 공부하라고 격려해준 남편이 참 고맙습니다.”
1일 오후 2시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학교 연합회’가 주최한 수기 공모전 시상식이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평생교육시설인 광주 진명중학교 1학년 과정에 재학 중인 김옥균(57)씨는 이날 50대 후반에 늦깎이 중학생이 된 경험담을 솔직하게 적은 글로 ‘교육인적자원부 대상’을 받았다.
김씨는 아버지가 7대 종손인 충남 당진의 종가에서 태어났다. 오빠가 셋, 여동생이 넷이고 사촌도 모두 한 집에 모여 사는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하지만 “계집애를 왜 중학교에 보내느냐”는 할머니의 말씀 때문에 김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접어야 했다.
“중학교는 못 갔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오빠와 동생의 교과서는 물론, 어머니가 생선을 사올 때 싸온 신문지도 모조리 읽었지요. 엄마한테 ‘왜 딸로 낳았냐’고 투정도 많이 부렸지요.”
김씨는 수기에서 학력 때문에 맞선 자리마다 거절당했던 일, 결국 오빠 소개로 만난 남편 노광택(58)씨에게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속이고 결혼한 사연들을 모두 털어 놓았다.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은 ‘여보, 기운 내. 내가 당신 학력을 고졸로 인정하면 되지’라며 위로해 주더군요. 부끄러움과 고마움에 엉엉 울었습니다.”
김씨는 6개월 전 어느 날 ‘같이 갈 데가 있다’는 남편을 따라 진명중학교를 찾았다. 남편은 그날 “당신이 내게 학력을 고백하던 날, 기회가 되면 꼭 학교에 보내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4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다. 수학 공식이나 밤새 외운 영어 단어는 다음날 모두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쉬는 시간마다 수다를 떨 정도로 친해졌다.
처음 수기를 쓸 때는 누가 알아볼까 가명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용기 있게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저와 처지가 비슷한 주부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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