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협상 비준안 처리문제로 나라가 수개월째 홍역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리를 둘러싼 국제 농업환경이 돌연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와 농민의 세심한 대처가 요청된다. 국제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에서 한국 일본 등 농산물수입국(G10)과 공동전선을 펴온 유럽연합(EU)이 미국 인도 브라질 등 농산물수출국(G20)의 요구를 받아들여 우리에게 크게 불리한 수정안을 제시한 까닭이다.
12월 홍콩 WTO 각료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세부원칙이 채택되면 마늘 고추 등 쌀 이외 농산물의 대폭 개방이 불가피해진다.
EU는 최근 농업분야에서 양보하는 대신 비농산물과 서비스 분야에서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해 실리를 챙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 개도국에 대한 농산물 관세상한 설정을 반대해온 기존 입장을 뒤집고 150%의 상한을 두는 협상안을 내놨다.
EU가 관세상한 설정을 끝까지 반대하고, 우리는 개도국 지위를 확보해 농산물 개방 태풍을 피해나가겠다던 정부 전략이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EU가 관세상한 뿐 아니라 관세감축률 역시 G10 입장과 달리 미국 등에 양보한 것도 우리에겐 부담이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협상이 매듭되면 현재 관세가 100%를 넘는 140여 품목의 수입 농산물 중 절반 이상이 ‘상한’과 ‘감축’의 이중 규제를 받게 돼 국내 관련 농가의 연 피해액이 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DDA 협상의 한 분야인 농업에서만 우리의 목소리를 마냥 높일 처지도 아니다. 규모로는 공산품ㆍ서비스 분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는 “관세상한 등에 집착하기보다 높은 관세가 인정되는 ‘민감품목’의 수를 넓히는 쪽에 힘을 쏟는 게 효율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관련 농가들의 이해가 복잡하고 시간이 촉박할수록 최대 공약수를 찾아내 원칙으로 밀고 나가고 지혜로 뒷받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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