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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은행잎을 주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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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은행잎을 주우며

입력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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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도시든 시골이든 은행나무가 참 흔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열 살이 되도록 나는 은행나무를 보지 못하고 자랐다. 할아버지가 다른 나무는 많이 심어도, 은행나무는 심지 않으셨다. 열매가 달리긴 해도 그걸 유실수로 여기지 않은 듯하다.

내가 은행나무를 본 것은 아랫마을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서였다. 그것도 삼사학년쯤 되었을 때, 나무보다 먼저 잎을 보았다. 어느 가을날, 우리 반 여자 아이들이 등교 길에 부채처럼 생긴 노란 잎을 주워와 그것을 책갈피에 하나하나 끼워 넣는데, 대체 그게 무슨 나뭇잎인지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모양의 나뭇잎도 있나 싶었다.

학교가 있는 아랫마을도 은행나무가 있는 집은 두 집뿐이라고 했다. 한 집 나무는 수나무라 열매가 달리지 않고, 한 집 나무만 열매가 달린다고 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올 때 일부러 멀리 그 나무 아래로 가 한 움큼 은행잎을 주워와 동생에게 보여주었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크고 모양 좋은 은행잎을 보면 저절로 허리가 숙여지는 것도 아마 그 잎을 처음 보았던 날의 깊은 인상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나는 가을마다 그 시절의 다 자라지 못한 소년처럼 책갈피에 은행잎을 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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