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도 오르기 힘든 히말라야에 도전한다는데 가족들이야 당연히 말리지요. 하지만 저를 포함한 모든 백혈병 환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백혈병 환자들의 모임인 ‘루 산악회’ 회장 최종섭(51)씨는 오는 12월 초 회원 5~6명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해발 8,091m) 남면 베이스 캠프(4,200m) 등정에 나선다.
‘루’라는 이름은 백혈병의 영어 명칭 ‘Leukemia(류키미어)’의 첫 음절에서 따온 것으로 회원 120여 명 대부분이 경기 의정부시 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45) 박사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는 백혈병 환자들이다.
최씨도 5년 전 ‘며칠 살기도 힘들 것’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던 말기 백혈병 환자였다. 하지만 극적으로 증세가 호전됐고, 이후 사업도 접은 채 백혈병 환자들의 권익 찾기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이 히말라야 등반을 결심한 데는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올 초 히말라야 청소에 나서 유명해진 산악인 한왕용(39)씨와 김 박사의 도움이 컸다. 김 박사는 올 초 ‘투병의지를 북돋우자’는 취지로 환자들에게 산행을 제안했고, 한씨에게도 동행을 부탁했다. 지난 5월 회원들과 1박 2일 코스로 충북 괴산 조령산에 올랐던 한씨도 쾌히 승낙했다.
한씨는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나긴 투병 생활로 의기소침해 있던 환자들이 ‘나도 이렇게 몸을 쉼 없이 움직일 수 있구나’하고 깨닫고는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더군요. 산행 내내 핏기 없는 얼굴에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환자들의 끈질긴 집념에 저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조령산 등반 후 한 환자는 거의 포기했던 사업을 다시 시작했고, 다른 환자는 취업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다. 김 박사도 ‘체력이 좋고 병 상태가 호전된 환자들은 히말라야에 올라볼 만하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암 환자들이 가기는 어렵다’며 망설이던 한씨도 동행을 결심했다.
이번 등반에는 백혈병 환자인 양향길(44), 유지형(38), 도원국(46), 김정훈(44)씨 등이 참가한다. 양씨는 2001년 우리나라 최초로 글리벡을 투약받아 예상 외의 빠른 회복세를 보여 화제가 됐고, 유씨는 골수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등반 기간은 13~14일로 일반 등반대보다 3일 정도 길다. 도중에 글리벡과 이뇨제 같은 약도 복용해야 하는 험한 길이다.
최종 참가 여부는 마지막 신체검사 결과에 달렸지만 이들은 이미 체력훈련을 시작했다. 히말라야 등반을 처음 제안한 최씨도 매일 뒷산을 오르며 훈련 중이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걱정하십니다. 절대 욕심내지 않고 힘 닿는 데까지 도전할 생각입니다. 백혈병 환자들도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