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협상에 대한 비준 동의안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안건을 상정하는 데 세 차례, 표결하는 데 세 차례에 걸쳐 물리적인 격돌이 있었으며, 농민들이 볏짚을 쌓아놓고 격렬한 항의를 하고 있는 가운데 본회의 통과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쌀 문제가 첨예한 정치적 이슈가 된 것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부터다. 김영삼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고 공약을 했다.
이 비장한 결의는 국내적으로는 통하였을지 몰라도, 100개가 넘는 나라가 참여하는 국제 협상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쌀 시장은 열렸고 애꿎게도 당시 황인성 국무총리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관련된 농림수산부 경제기획원 외무부 장관들도 함께 옷을 벗었다.
아울러 성난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농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하여 42조원의 자금을 농촌에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농업협상 때마다 큰 홍역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는 쌀 관세화 유예를 위해 다른 나라와 협상에 합의하고 농민들은 그 협상 결과에 큰 불만을 가지고 격렬한 시위를 하고 정부는 이를 달래기 위해 119조원의 농업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도하개발아젠다(DDA)에서 새로운 농업 협정이 채택될 때 또 한 번 홍역을 치르고, 다시 10년 후 쌀 관세화 문제로 정부와 국회와 농민이 극렬히 대립하는 국면을 맞게 될 것이 틀림없다.
문제의 해법은 농업에 대한 감성적인 대응이나 정치적인 고려에 우선하여 국제적인 규범의 내용과 동향을 분석하고 국내 경제 여건에 적합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쌀 시장 개방 이후에도 추곡 수매가격에 대한 국회동의제도를 통하여 쌀값을 지속적으로 상승시켜 왔지만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쌀 가격을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또한 농민단체인 전국중앙협의회가 앞장 서서 쌀 관세화를 검토하고 정부에 건의하여 실시토록 하였다.
우리의 쌀 문제도 국제협정의 틀을 토대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택의 길은 유예 또는 관세화 둘 중의 하나밖에 없는데 ‘우리의 쌀 시장을 관세화, 즉 관세 이외의 제한을 없애고 수입토록 허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농민에게 던진다면 거의 대부분의 농민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수출국과 합의한 최소수입물량 확대와 일부 쌀 시판 허용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였지만 관세화 유예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유예 연장을 위한 국회 비준을 거부하는 것은 정부의 쌀 농업정책에 불만을 표출하고 이를 계기로 농민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큰 허점이 있다.
볏짚을 태우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는 속에서 비준 시한에 쫓겨 발표되는 대책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 없다는 점이다. 과거 되풀이되었던 농업 투자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농업은 비준을 담보로 급박한 해결책을 마련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이며, 따라서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 긴 안목을 가지고 대책을 만들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결국은 쌀 경쟁력 향상뿐
근본적인 대책은 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고시히카리(越光)’라는 고급 쌀을 개발하여 전체 생산량의 30%까지 확산하였으며, 그 중 일부는 미국 캐나다 대만 등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단계이지만 쌀의 브랜드화가 이루어지고 오리 농법 등 유기농 쌀이 재배되고 있으며 인터넷을 활용한 유통 비용 절감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광활한 토지와 좋은 기후 조건을 갖춘 농산물 수출국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품질을 고급화하고 기능을 특성화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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