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것은 1948년 12월이다. 2차 대전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3년 뒤다. 그 후 인권은 문명국가가 지켜야 할 인류의 보편적 기준으로 받들어져 왔다. 선언의 전문(前文)은 길지만 인상적이다.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여(讓與)할 수 없는 권리를 승인함은 세계에 있어서의 자유, 정의와 세계평화의 기본이 되는 것이므로, 인권의 무시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유린하는 만행을 초래하였으며…>인류사회의>
▦ 유럽연합(EU) 25개 회원국이 다음 달 유엔총회에 북한인권 결의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북한인권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온 유럽연합으로서 당연한 귀결이다. 때 맞춰 한국의 보수신문들이 일제히 이 문제를 날카롭게 부각시켰다.
28일자 사설을 보면 ‘유엔총회로 가는 北 인권에도 눈감겠다는 정부’ '남북관계 핑계로 북한인권 회피 못한다’ ‘세계가 말하는 北 인권, 홀로 눈 감는 정부’ 등이다. 북한과 참여정부를 싸잡아 사정없이 비판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합당한 인권존중과 체제개방이 있어야 한다.
▦ 정부는 최근 3년 동안 유엔인권위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했다.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딜레마다.
남북관계 개선이 싹튼 DJ정부 때는 그렇다고 쳐도, 이제는 서서히 북한 인권을 말할 때라고 본다. 참여정부다운 명분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너무 성급하고 강파른 주장을 펴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다. 관계개선 속도에 맞춰 목소리를 높여갈 필요가 있다.
▦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보수신문들의 인권에 대한 이중적 태도다. 북한인권을 높이 외치면서도, 강정구 교수의 인권에는 눈을 감는다. 아니, 인권보호의 반대 편에 선다.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게 강 교수를 수사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불구속’ 수사를 하라고 했다고 난리다. 당일 사설을 보면 ‘이 정권은 강정구씨의 국선 변호인인가’ ‘천 법무 수사 지휘, 검찰독립 침해 우려’ ‘김종빈 총장, 끝까지 검찰 독립 수호해야’ 등이다.
이 모순과 이중성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다. 신물이 날 정도인 강 교수 사건을 다시 들춰낸 점은 죄송하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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