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간 미 CIA 기밀누설 사건(리크게이트)를 수사해온 패트릭 피트제랄드 특별검사는 28일 루이스 리비 미 부통령 비서실장을 사법방해와 허위증언 2건, 선서 상태에서의 위증 2건 등 5개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기소되자 마자 즉각 사임했다. 그의 기소는 미 권력의 심장인 백악관이 ‘신뢰의 위기’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 주요언론들은 2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남은 임기동안에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인용하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백악관 진용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이번 기소내용은 사건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리크게이트의 핵심은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기밀 정보를 누설했고, 결과적으로 전쟁 정당화를 위한 정보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피츠제랄드 특검은 이 부분을 밝혀내는 대신 리비의 은폐 시도를 사법처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야구 심판에게 모래를 뿌려 방해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리비의 기소는 당장 정권의 구심력을 크게 약화시킬 게 분명하다. 우선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불리던 딕 체니 부통령은 배후 인물로 각인되면서 불신의 보다 직접적인 타깃이 됐다.
기소 내용에 따르면 체니 부통령은 CIA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남편으로 이라크전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대리대사의 뒤를 캐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체니 부통령은 CIA로부터 알아낸 윌슨 전 대사의 부인이 CIA 요원이라는 사실을 2003년6월 리비 비서실장에게 전했을 뿐만 아니라 2003년7월엔 공군 2호기에서 이뤄진‘언론대책’협의에도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플레임의 신분을 기자들에게 직접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리크 게이트’의 대부분 의혹이 그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또 체니 부통령은 리비 비서실장의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서야 한다.
전체적인 재판을 통해 개입 정도가 더 확인될 경우 그는 회복하기 어려운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과정에서 체니 부통령이 혼신을 다해 옹호하려 했던 이라크전 개전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도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로브 차장을 기소하지 않고 계속 조사키로 한 것은 이번 특검이 남겨 놓은 뇌관이자 한계다. 추가 조사를 통해 로브 차장마저 기소될 경우, 그 폭발력은 리비 비서실장 기소에 비할 바가 아니다.
피츠제럴드 특검은 로브 차장에게 ‘법적인 위험’에 처했음을 경고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경고로 끝날 경우 이번 분리 기소는 면죄부로 가는 중간 단계였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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