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될 자동차 엔진은 무엇일까.’
바로 다름아닌 현대자동차가 독자 개발한 쎄타엔진이다. 현재 현대차의 쏘나타에 장착되고 있는 배기량 1,800~2,400㏄의 이 엔진은 앞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준중형차인 ‘네온’과 ‘세블링’, ‘PT크루저’ 등과 미쓰비시의 ‘란서’, ‘콜트’ 등에 모두 장착된다.
이미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자동차는 총 5,700만달러의 기술이전료를 현대차에 지불한 상태다. 우리가 만든 엔진이 미국과 일본 자동차의 심장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쎄타엔진의 연간 생산량은 182만대까지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도요타의 코롤라(105만대)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현대차는 이미 아산과 화성공장에서 각각 연산 30만대씩 총 60만대 생산 체제를 갖췄다. 지난달엔 일본 교토에서 미쓰비시가 40만대 규모의 쎄타엔진 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이달초엔 미 미시간주 던디시에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연산 42만대의 쎄타엔진 공장을 준공했다. 이어 내년에도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똑 같은 규모의 제2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현대차가 쎄타엔진 개발에 나선 것은 1999년. 당시 현대차는 세계 일류 메이커가 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신기술의 고성능 엔진이 필요하다고 보고 극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완성차의 경쟁력은 엔진 경쟁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출력뿐 아니라 연비와 환경까지 고려한 ‘월드 베스트’ 엔진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먼저 가벼운 알루미늄 엔진 블록을 채택하고 가변식 흡기 밸브 시스템을 통해 연료 소모를 최소화시켰다. 또 엔진의 진동을 줄여 정숙성을 높이고 타이밍벨트를 반영구적인 체인으로 교환했다. 배기관은 스테인리스강으로 채택, 내구성을 강화했다.
2002년 드디어 쎄타엔진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현대차는 당시 제휴관계에 있던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엔진 관계자 7명을 초청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작 그룹인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후륜 구동 차에 강점을 갖고 있는 반면 배기량 2,000㏄ 안팎의 전륜 구동용 엔진은 새로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이들은 닷새동안 엔진을 분석하고 설계도를 꼼꼼히 살핀 뒤 결국 ‘메르세데스-벤츠가 해도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직접 개발 보다는 현대차의 쎄타엔진을 구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기술이전료를 내겠으니 설계도를 받아 생산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 쎄타엔진의 성능은 동급 세계 최고 수준이다. ‘쎄타 2.4 엔진’의 경우 최대 출력이 5,800rpm에서 166마력으로 같은 배기량인 도요타의 캠리(최대출력 159마력/5,600rpm)나 혼다의 어코드(최대 출력 160마력/5,550rpm)에 뒤쳐지지 않는다.
최대 회전력(토크)도 23.0㎏ㆍ㎙/4,250rpm으로 캠리(최대토크 22.4㎏ㆍ㎙/4,000rpm)와 어코드(22.3㎏ㆍ㎙/4,500rpm)와 대등하다.
현대차는 나아가 앞으로 엔진 뿐 아니라 안전성과 전장, 환경, 하이브리드 차와 연료전지 등의 부문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기술력을 바탕으로 승부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2001년 8,900억원 수준이었던 현대차의 연구개발비는 올해에는 1조9,600억원으로 5년동안 2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현대차의 R&D 투자는 지난해 도요타의 R&D 투자가 74억달러(약 8조원)에 달했다는 점에서 아직 크게 부족한 수준”이라며 “연구인력도 7,000명이 안 돼 도요타(1만5,0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만큼 R&D 투자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엔진 '알파에서 람다까지'
거의 일주일에 한 대 꼴로 엔진이 깨졌죠. 좌절감에 혼자 산에 올라가 눈이 퉁퉁 붓도록 운 일도 적지 않습니다.”
현대차의 독자 엔진 기술은 연구개발팀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현대차가 처음 독자 엔진 개발에 나선 것은 1978년. 미쓰비시로부터 새턴 엔진을 도입, 국내 첫 고유 모델인 ‘포니’를 만들어 낸 현대차는 나아가 자동차의 심장인 독자 엔진 개발에 도전했다.
84년 영국의 엔진 개발 컨설팅사인 리카도와 기술 협력 계약을 체결한 현대차는 리카도에 기술자를 파견, 기술을 습득하게 했다. 이와함께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엔진 개발 경험을 쌓은 이현순 박사(현 연구개발총괄본부장 사장) 등을 스카우트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85년 알파엔진 시제품 1호가 제작됐다. 돼지머리로 고사를 지낸 뒤 시동을 걸자 엔진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힘차게 돌았다.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어진 엔진 내구 시험에서 알파엔진 시제품은 무려 20여대나 부숴졌다. 당시 시험용 엔진의 가격은 무려 5,000만원. 이러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91년 알파엔진과 알파변속기 개발이 완료됐다. 엔진 기술 자립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배기량 1,500㏄의 알파엔진을 소형차 엑센트에 올린 현대차는 95년에는 아반떼XD에 탑재할 베타엔진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97년에는 경차 아토스용 입실론 엔진이 개발됐고 98년에는 EF쏘나타용 델타 엔진까지 만들어냈다. 독자 엔진 개발이 중형차까지 확장된 것.
같은 해 그랜저XG용 시그마 엔진에 이어 99년에는 초대형차인 에쿠스용 오메가 엔진까지 내 놓았다. 나아가 2002년 개발된 쎄타엔진은 드디어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가 기술이전료를 내고 사 갈 정도로 세계적인 성능을 과시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그랜저에 탑재되는 뮤 엔진과 람다 엔진을 선보이며 세계 자동차 업계를 다시 놀라게 했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람다 엔진은 배기량 3,300㏄와 3,800㏄의 고성능, 6기통 엔진으로 50개월 동안 82명의 직접 개발인원과 6,010억원의 비용이 투입됐다.
람다 3.3 엔진의 경우 최고 출력이 233마력, 람다 3.8 엔진도 252마력을 기록해 경쟁 엔진 대비 실출력면에서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엔진개발 과정에서 국내 및 해외에 총 55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국내 부품업체들도 엔진개발 초기부터 적극 참여시켜 획득된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부품산업 수준까지 한단계 도약시켰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생산에 나선 나라 중 고유모델과 독자 엔진 기술로 자동차 강국이 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일근기자
■ 친환경 미래차 어디까지
현대ㆍ기아차는 엔진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에 집착하지 않고 친환경 미래차로 주목받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와 수소 연료전지 차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현대ㆍ기아차는 연료전지 차 상용화의 관건인 수소 압축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ㆍ기아차의 ‘중ㆍ장기 R&D 계획’에 따르면 2008년까지 하이브리드 차와 수소 연료전지 차의 기술 등을 축적한 뒤 2009~2010년 하이브리드 차를 양산하고 2011~2015년엔 연료전지 차의 상용화를 선도키로 했다. 일본 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 보다는 미래형 자동차의 최종 모델이 될 ‘연료전지 차’에 힘을 쏟겠다는 것.
현대차는 이에 앞서 올해 말 베르나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인 뒤 2007년에는 중형차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고 2010년까진 연간 30만대의 하이브리드 차 양산 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대ㆍ기아차는 최근 경기 용인시 구성읍에 ‘현대ㆍ기아차 환경기술 연구소’ 를 준공했다. 자동차와 관련한 환경기술 전 분야에 걸친 독자 연구소를 세우기는 세계 자동차 업체 중 현대ㆍ기아차가 처음이다.
또 연구소 내 700기압 수소 충전소는 향후 수소에너지 공급시설 확대를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 연료전지 차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700기압 수소 충전 기술은 한번 충전으로 300㎞ 이상 주행할 수 있는 수소 연료전지 차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용어설명
1.
하이브리드 차-‘혼혈’, ‘잡종’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는 기존 내연기관 엔진에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는 모터를 결합한 차. 연료 소모가 적은 편이다.
2.
수소 연료전지 차-수소를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Fuel Cell)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차. 물 이외엔 배출 가스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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