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9시, 서울 금천구 한 사회복지관을 찾았다. 치매나 뇌졸중을 앓는 노인 25명이 요양 중인 유료시설이다. ‘치매’라는 말이 주는 암울함 탓일까. 건물에 들어서기 전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1, 2층 복도 양 옆으로 10개의 방이 늘어서 있다. 한 방에 들어서니 2평 남짓한 방 안에 이명호(77ㆍ가명)씨가 보였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그는 피곤한 기색이었다.
인기척을 내고 옆에 앉았지만 아무 말이 없다. 1년 전 뇌졸중이 와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됐고 치매까지 앓고 있다고 했다. 마비가 온 오른팔은 굳은 채로 가슴을 향해 접혀 있다. 손발을 주무르며 말을 붙여 보지만 애초부터 쉽게 얘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며느리…가…나…땜에…고생…많았지….” 이씨의 첫 마디. 느리지만 또박또박 했다. ‘치매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선입견이었다. 차근차근 더듬는 과거의 기억은 또렷한 편이었다.
다만 평생을 몸에 익혔던 정상적인 생활방법 몇 가지를 잊고 있을 뿐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벽에 걸린 물건을 마구 떼어내거나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던지는 중증 치매노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간병인들은 설명했다.
한번 대화가 오가자 말동무가 그리웠던지 한참을 얘기한다. 그러다 “목욕하러 가셔야 한다”는 말에 금세 표정이 일그러졌다. 보통 이틀에 한번 하는 목욕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 뿐 아니라 간병인에게도 고역이다.
몸을 완전히 밀착해 안아서 들어야 하기 때문에 휠체어에 태우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는 벅차다. 욕실 의자에 앉히고 조심스럽게 웃옷을 벗기려 하자 오른팔이 불편한지 자꾸 몸을 뒤로 뺀다.
방에 들어갈 때는 몰랐었는데 바지를 벗기고 나자 기저귀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하루에 5, 6번씩 기저귀를 교체하면서 수시로 살펴보지만 이렇게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르신 다섯 분을 구석구석 목욕시키고 나니 허리가 뻐근해지면서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맺혔다. 한 간병인은 “간병 일을 시작했다가 하루 만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나마 이런 유료 요양시설이라도 이용할 수 있는 이씨는 나은 편이다. 치매노인을 집에서 감당해야 하는 경우에는 곧잘 가정불화로 이어진다.
사회복지관 이경옥 원장은 “비용 문제로 치매노인을 집에서 모시다가 가정이 파탄지경에까지 이른 뒤에야 데려오는 것을 볼 때면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살해했다는 가슴 아픈 보도가 떠올랐다.
목욕을 마치자 점심시간이다. 숨돌릴 틈도 없다.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노인을 도와야 한다. 방에 누워 겨우 “아이고, 아이고”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장성민(64ㆍ가명)씨를 부축해 수저를 입에 가져갔다.
밥알만 오물오물 씹어 넣을 뿐 국물은 밖으로 흘리는 게 반이다. 한 손으로 떠먹이고 다른 손으로 닦아주면서 식사를 마치니 장씨는 다시 “아이고”라는 말만 중얼거린다.
다른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니 최옥순(78ㆍ여ㆍ가명)씨가 양말을 흔들면서 어서 들어오라고 한다. 양말을 신겨주려고 다가갔더니 양말을 열심히 접어 무엇인가 만든다. 색종이인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는 다시 양말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쳤다. 마침 최씨의 딸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를 여기에 모시기까지 쉽지 않았다는 딸은 “처음엔 자식들이 모시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 형제 간에 갈등이 커져 힘들었다”며 “이제 자식들도 마음이 편하고, 더 자주 찾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인성 치매에 대한 인식전환을 당부한다. 서울시 치매노인종합상담센터 관계자는 “치매를 노망이나 정신이상으로 치부, 숨기려고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치료와 요양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비용 부담이 적은 요양시설을 확충하는 게 우선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05년 치매노인 규모가 35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후 5시, 자원봉사를 마치고 나서는 기자에게 노인들이 “언제 또 놀러 올 꺼야”라며 배웅을 했다. 무표정했던 얼굴 위에서 조그만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 치매노인 6개월이상 도움 필요하면 급여 대상
정부는 고령사회에 대비한 노인수발보장법을 지난 19일 입법예고 했다.
법안은 다음달 입법예고가 끝나면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12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2007년 시행을 목표로 했지만, 노인 수용시설 부족 등이 예상돼 2008년 7월부터 실시키로 했다.
당초 법안의 이름은 노인요양보장법이었다. ‘요양’이란 단어가 의료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바꾸었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왜 필요하나 우리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핵가족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여성의 사회참여도 늘고 있다. 가정에서 아픈 노인을 간호하고 수발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노인수발을 개별 가정의 문제로 여겨왔던 정부는 “가정에서 노인을 돌보는 것이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 이 법안이 시행돼 치매, 중풍 등의 노인성 질환의 고통을 사회적 연대로 짊어지면 노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그 가족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부담이 크게 주는 등 국가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슨 내용 65세 이상 노인 또는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64세 이하인 연령층 가운데 장애 때문에 6개월 이상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수발등급판정위원회가 인정하면 급여 대상자가 된다. 수발보장에 들어가는 돈은 국고지원, 보험료(건강보험 가입자는 의무적으로 내야 함), 본인부담으로 충당한다.
보건복지부는 1인당 월보험료가 실시 첫해에 1,835~2,189원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본인 부담금은 수발시설 이용 비용의 20%(기초생활수급자는 무료, 차상위계층은 10%)로 책정돼 있다.
수발급여에는 ▦자신의 집에 머무는 수발인정자에게 간병, 간호, 목욕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급여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하는 시설급여 ▦수발시설이나 인력이 모자라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수발을 받을 때 지급하는 수발수당 등이 있다.
남는 문제점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국가부담 비율(20%)은 너무 작고 본인부담 비율은 너무 높아 빈곤 저소득계층의 경우 자칫 서비스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또 지방자치단체에 재정적 부담만 지울 뿐 제도운영에서는 철저히 배제돼, 지역밀착형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치료’가 아닌 ‘수발’ 제도라 의료서비스와 연계가 불분명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제도 운영을 위해 노인수발평가관리원이라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은 부처 이기주의요,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최성욱 기자 feelchooi@hk.co.kr
■ 치매노인 복지시설 현황
치매ㆍ중풍 등을 앓는 노인들에게 급식, 영양, 기타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전문요양시설은 무료와 유료로 나뉜다. 무료시설은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대상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보건복지부의 2005년 노인복지시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는 모두 108개의 무료시설에서 7,027명의 노인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다.
유료시설은 시ㆍ도의 재정지원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실비시설과 보호자가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는 시설로 구분된다. 실비시설의 경우 비용은 보통 월70만원 수준.
올해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3곳을 시범운영하며 400명을 수용하고 있지만 대기 인원만 200여명에 달할 만큼 이미 포화상태다. 정부는 점차 다른 시ㆍ도까지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반면 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지 않는 유료시설은 보호자가 월120만~150만원의 비용을 부담한다. 현재 34개 시설에서 925명이 사용하고 있는데 비인가 시설까지 합하면 그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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