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분증’(花紛症ㆍ꽃가루 알레르기)은 악명이 높다. 주범은 삼림의 40%를 차지하는 삼나무다. 삼나무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밀려들면 정상인도 재채기를 피하기 어렵다.
패전 후의 육림사업이 비난의 표적이 됐다. 그런데 삼나무는 유사 이래 일본 열도에 자생해 왔고, 현대적 육림정책의 결과 이미 60년대에 하늘을 가릴 정도였지만 화분증은 70년대 후반에야 본격적으로 문제가 됐다. 같은 알레르기 질환인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일본의 60ㆍ70년대를 가르는 잣대의 하나가 수세식 화장실이다. 64년 도쿄올림픽을 거치면서 급격히 ‘푸세식’을 대체했다. 한국에서도 80년대 후반 수세식 화장실이 ‘푸세식’을 본격적으로 대체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나 공교롭게도 90년대 후반 들어 한국에서도 꽃가루 알레르기와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해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이 흔히 거론된다.알레르기와 위생ㆍ청결과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는 가설이다. 선진국 어린이의 아토피성 피부염 유병률(有病率)이 20%로 저개발국 어린이(2%)의 10배에 이른다는 등의 조사로 통계적 의미는 갖추었다.
알레르기는 지나친 면역 반응이다. 외부인자에 대한 인체의 방어 기능이 균형을 잃은 결과이다. 면역 균형은 전투와 마찬가지로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지나친 위생으로 외부인자와 접촉한 경험이 부족하면 너무 약한 방위태세를 발동해 침입자에게 지거나(발병), 과도한 방위태세를 발동해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다(알레르기).
■수세식 화장실은 음식물의 순환을 차단한다. 흙에 거름으로 뿌려진 똥오줌을 농작물을 통해 다시 흡수하고 내보내는 순환을 가로막는다. 인간의 오랜 진화과정에서 늘 함께 했던 기생충과의 접촉도 막았다.
기생충이 인체 내에서 분비하는 물질이 알레르기를 막는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더라도, 인간이 기생충 없는 삶에 적응해 새로운 균형을 찾는 ‘진화’에 필요한 시간이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위생가설’은 지나친 위생ㆍ청결이 정신적 불균형인 결벽증은 물론 신체적 면역 불균형을 부른다는 각성이다. 기생충 알이 든 김치를 권할 수는 없지만 경계심이 지나친 것도 병이다.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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