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현대문화의 총아다. 애니메이션으로 변주 될 뿐 아니라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 실사영화의 화수분 역할을 하고, 팝 아트 등 현대 미술에도 마르지 않는 영감을 제공한다. 간략한 그림 구성만으로도 글자들이 빼곡이 채워진 두툼한 책 못지않은 정보 전달자의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피카소가 생전에 한 번도 만화를 그리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예술적 가치까지 인정 받고 있지만, 사실 만화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만화의 선구자인 로돌페 퇴퍼 조차 교육자로서의 명망에 상처를 있을까 봐 첫 작품 ‘비외 부아 씨’ 출간을 망설였다고 한다. 괴테의 격려가 없었다면 그의 만화는 책상 서랍에 사장된 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퓰리처와 허스트가 벌인 ‘신문 전쟁’의 한복판에서 외형적 성장을 거듭하던 시기에도 만화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퍼니스’(Funnies)로 불리다가 ‘코믹’(Comic)이라는 명칭을 얻게 될 만큼 초창기 만화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우스개를 주로 다루었고, 그래서 저급문화의 한 장르라는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옐로우 저널리즘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으며, 윤리성 시비에 휘말려 만화규약이라는 것을 만들어 출판업계 담당자들이 자체검열을 하거나 국가에 의해 만화가 소각되는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만화가 마침내 음지를 벗어나 양지로 나와 1971년 프랑스 ‘라루스 알파벳 대백과사전’에 의해 제9의 예술로 규정되기까지는 숱한 만화가들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있었다. 이들은 그림과 텍스트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거나 네모 칸으로 공간과 시간을 구분해내 여러 개의 그림들이 연속적으로 충돌하며 서사구조를 만들어내는 만화만의 표현 방식을 확립했다.
독일 만화 전문잡지 ‘코믹세네’를 창간하고 만화대본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안드레아스 크니게의 ‘클라시커 50 만화’는 만화가 예술로서 자리매김하기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칙 영, 엘지 크라이슬러 시가, 찰스 슐츠, 데츠카 오사무 등 50명의 작가와 대표작 등을 통해 만화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는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블론디와 땡땡, 미키마우스, 타잔, 슈퍼맨, 아톰 등의 탄생 비화와 성장과정을 좇고 그들이 만화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평가한다.
뽀빠이는 원래 단역으로 출연했다가 주연을 꿰차게 되었고, 블론디의 덤플링은 만화가 출산한 최초의 아이라는 등의 여러 재미나는 에피소드들도 눈길을 끌지만, 당대의 시대상을 면밀히 반영하는 만화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했다는 데 더 큰 값어치가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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