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ㆍ26 재선거는 막판까지 예측 불허의 혼전을 벌였다. 재선거 결과는 이었지만, 승패와는 다른 차원에서 몇 가지 깊이 있게 음미해야 할 시사점을 남겼다.
1. 정권에 대한 중간 심판
‘재보선은 여당에 불리하다’는 통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재보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민심이 여당에 보다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고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재선거지역 4곳에서 모두 고전했다. 각종 지역개발 공약도 유권자들의 표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사상 최저임을 반영하듯 유권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나름대로 선전한 대구 동을의 이강철 후보는 사실상 개인 역량에 의존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당 후보가 홍보물에 우리당 표기를 하지 않거나 글자 크기를 줄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압도적 우세를 점한 것도 아니다. 수치상 승패를 떠나 전반적으로 한나라당도 빡빡한 승부를 벌였다. 이는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확실한 대안세력으로 투영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2. 다소 엷어진 지역색
주목할 대목은 지역색이 희석되는 징후를 보였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4ㆍ30 재보선 때 경북 영천에서 가까스로 이긴데 이어 이번에도 대구 동을에서 접전을 벌였다. 한나라당의 텃밭이 다소 흔들리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박 대표가 유세 마지막 날 이곳에 ‘올인’한 것도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는 달리 말해 박 대표의 위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우리당이 의도적으로 중앙당의 지원을 최소화하는 바람에 재선거 열기가 가라앉은 측면도 있지만, 박 대표의 이미지나 고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만으로 낙승을 거두기에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는 향후 대선에서 박 대표가 극복해야 할 포인트를 제시해주고 있다.
3. 숨겨진 야당 표
야당 지지표가 예상보다 많이 숨어있었다는 사실도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막판 여론조사에서 대구 동을, 경기 광주, 울산은 한나라당이 오차 범위인 1~3% 정도 앞서는 접전 구도였고 경기 광명만 한나라당이 5%~7% 정도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여론조사보다 2~3배 이상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론조사에서 의사를 숨겼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여론조사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덜 드러나는 게 상례이지만, 이번처럼 많이 숨어있었던 것은 최근 정국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선 최근 여권이 보인 공격적 태도가 야당 지지자들을 숨게 했고, 도청 파문 등도 그런 경향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4. 여전한 저질 공방
아쉬운 점은 여야의 저질공방이 여전했다는 사실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마자 부재자 대리투표를 둘러싸고 거친 설전을 주고 받더니 행정조직 동원, 허위사실 유포, 흑색선전 공방 등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구태를 반복했고, 고소ㆍ고발도 단골 메뉴에서 빠지지 않았다. 다만 금권선거시비가 사라진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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