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은 곧 생명입니다.”
우리나라 김치의 일본 수출 물꼬를 처음 튼 김치제조업체인 전남 나주시 금천면 ㈜삼진지에프. 26일 오후 찾아간 김치공장 입구에는 작업자의 몸을 소독하기 위한 에어샤워실이 설치돼 있었다.
위생복을 입고 에어샤워기를 통과해 들어가본 작업장은 김치공장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미생물 증식을 막기 위해 작업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바닥에 물기마저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김치공장이 반도체 제조공장에 버금갈 정도의 위생시스템을 갖춘 것은 다름아닌 일본 김치 수입업체의 철저한 생산현장 위생관리 때문이다.
삼진지에프는 일본에서도 내로라하는 대형할인점인 이토요카도사, 요크 베니마루사 2곳에 1987년부터 18년째 김치를 납품하고 있지만 지금도 1~2개월에 한번씩 일본 바이어들의 위생점검을 받고 있다.
허귀호 생산관리이사는 “일본 김치수입업자들의 경우 김치의 식품안전성은 물론 작업자 개인의 건강상태까지 챙길 정도로 위생관리가 철저하다”며 “반도체 제조공장 수준의 위생관리를 갖춰야만 비로소 일본에 김치를 수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김치 수입업체의 위생규정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본 바이어들은 국내 김치 수출업체로부터 김치의 염도, 산도, 당도, 색상, 씹히는 맛 등에 대한 이화학시험과 관능검사 등 품질관리 자료를 넘겨 받아 제품관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또 우리나라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는 김치의 유산균 함유량과 대장균, 진균류의 검출 여부 등을 확인하는 미생물 검사까지 요구한 뒤 자체 검사결과와 비교해 차이가 날 경우 곧바로 클레임을 제기한다.
김치에서 혹 돌멩이 등 이물질이 발견될 경우 소비자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중대사고’로 규정, 곧바로 납품 업체에 대한 현장위생 및 설비점검을 실시하고 사고원인 및 사후대책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심지어 김치 저장용기의 온도와 컨테이너 출하시 제품의 온도까지 규정하고 있다. 40여 가지에 달하는 품질기준은 물론 개인 및 생산 설비 위생상태, 작업자의 동선(動線),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바이어들이 철저하게 ‘심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일본 김치수입업체들의 엄격한 위생관리 기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김치제조업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중국산 김치가 말썽을 일으킨 사례가 거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게 국내 김치제조업체들의 설명이다.
광주의 한 김치제조업체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은 중국 김치제조업체의 부실한 위생관리를 우려해 아예 중국 현지에서 직접 김치공장을 설립, 운영하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중국산 김치가 일본에 반입되더라도 위생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진지에프 관계자는 “국내에서 중국산 김치 파동이 일어나는 것은 국내 수입업자들이 제품의 위생 관리는 하지 않고 가격 관리만 하기 때문”이라며 “일본처럼 수입업자들이 철저하게 생산현장의 위생관리를 한다면 제2의 중국산 김치파동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글ㆍ사진 안경호기자 khan@hk.co.kr
■ "한국업자 품질은 뒷전 가격만 관심"
”중국산 김치를 기생충 김치라고 부르는 통에 고교생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3년 전부터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하며 한국으로 수입해 판매하고 있는 정모(48)씨는 김치 수입업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처벌하되 업계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씨는 “정부가 중국에 있는 140여개의 김치공장 중 고작 16곳을 조사해 결과를 발표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국산 배추도 국내산과 마찬가지로 화학비료로 키우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비료를 과도하게 사용해 걱정”이라며 인분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불결하다는 선입견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또 정씨는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는 김치는 최근 중국 위생국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22일 언론 보도 이후 통관절차가 지연돼 판매시기를 놓치고 말았다”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정씨가 바라본 중국 현지의 반응은 훨씬 더 심각하다. 정씨는 “중국인들은 이번 김치파동을 국가적인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자칫 반한(反韓)감정이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정씨는 “김치가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퍼져 베이징(北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비가 증가하던 추세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기세가 꺾여 버렸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씨는 김치 수입업자들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같은 중국산 김치라도 일본 수입업자의 경우 품질을 우선하는데 비해 국내 수입업자들은 무조건 가격부터 보는 경향이 있다”며 “중국산 김치 파동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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