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앨런 그린스펀(79)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5일 벤 버냉키가 후임 의장으로 내정되면서 사실상 물러났다. 그의 임기는 내년 1월 31일까지지만 이제 무게 중심은 버냉키로 옮겨갈 것이 확실하다.
그는 1987년 6월 폴 볼커의 후임으로 FRB 의장에 오른 이후 재임 기간 동안 미국 역사상 가장 급격한 경제성장과 저인플레 시대를 이끌며 미국 경제는 물론 국제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린스펀이 FRB 의장을 맡을 때만해도 시장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컨설팅업체인 ‘타운센드 앤드 그린스펀’대표인 그를 지명했을 때 다우 지수는 22.6%(508포인트) 폭락했다.
그러나 그는 취임 후 두 달이 지난 10월 19일 이른바 ‘검은 월요일’로 불리는 주가 대폭락으로 시장이 위기에 처했을 때 “FRB는 시장의 유동성을 계속 지켜가겠다”는 한 줄짜리 성명으로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다. 또한 대공항 이래 가장 심각한 금융 공황으로 평가 받는 저축대부조합 대량파산사태와 94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동아시아(97년), 러시아(98년), 아르헨티나(2002년)로 이어진 금융통화위기 속에서도 예리한 분석력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이를 이겨냈다.
특히 그린스펀은 전임자들과 달리 FRB의 개방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사회 멤버들에게도 언론 앞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면서 언론과 시장이 FRB의 철학과 방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의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반면 그에 대한 시장의 지나친 신뢰는 무모한 투자를 야기하기도 했다. 위기 때마다 통화공급을 확대하면서 버블을 만들어 냈다는 논란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쌍둥이 적자 문제도 역시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그린스펀의 향후 행보도 관심을 끈다. 현재로서는 공식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은퇴 이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로 경제 자문 역할을 맡을 것으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부에서는 경제계에 영향력을 남기기 위해 그가 헤리티지 재단이나 대통령연구센터 같은 곳으로 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