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의 감세 논쟁을 지켜보는 심정은 답답하다. 최근 수 년간 계속되고 있는 재정 적자로 국가채무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가 목표에 미달해서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9조원이나 되는 세금을 깎아 주겠다는 정치권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일부 계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 게 올바른 것 같은데,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고 부족한 재원은 국채 발행으로 보충하자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감세를 주장하는 분들은 세금을 줄이면 소비와 투자가 늘고 경기가 살아난다는 하는데 우리 현실이 정말 그럴지 의문이다. 요즘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게 무거운 세금 부담 때문일까?
고소득층은 한계 소비성향이 낮기 때문에 세금이 줄어든 것만큼 소비를 늘리지 않을 것이고, 기업들도 대규모 여유 자금을 보유하고 있어 감세가 소비와 투자로 확대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19.6%)과 국민부담률(25.3%)이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평균은 각각 28.2%, 37.6%)보다 낮다는 점도 현 시점에서 감세가 시급한 정책 대안이 아님을 보여준다.
●세금 준다고 소비·투자 늘까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국가가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눈높이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 보육에 대한 투자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제고, 교육 문제의 해결과 인력 양성, 기초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등은 민간에 감세 혜택만 주는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9조원이나 되는 대규모 감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 재정 악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이 주장하는 감세안에는 지방 재정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록세를 4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이를 지방교부금 인상을 통해 보충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2005년 현재 지방 재정 규모는 약 35조원인데 이 가운데 등록세로부터 조달되는 세수가 8조원이다. 요컨대 등록세는 지방 재정 중 가장 안정적이고 규모가 큰 세원이다. 등록세를 폐지하고 지방교부금을 인상한다면 지방 재정의 안정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국세를 약 12조원(정부 추산) 삭감하자고 주장하면서, 지방에 내려보낼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지도 의문이다.
감세 주장의 근저에는 나라 살림에 낭비 요인이 많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집행 과정에서 일부 타당한 측면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라 살림을 짜고 운영하는 모든 절차와 과정이 국회의 심의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나라 살림의 어느 부분에 낭비 요인이 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치권이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인데, 감세를 주장하면서 낭비 요인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는 게 필자는 답답하다.
●복지 위해선 부담 증가 감내해야
현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최선의 방도는 예산 낭비를 막는 장치를 강화해 가면서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그러나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을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대로 하려면 국민 부담은 오히려 다소 높아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출산, 보육, 교육, 과학기술, 복지, 국방 등 개별 사업에 대해서는 충분한 재정 집행을 요구하면서, 총론적으로는 세금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이다.
낭비되는 예산 사업을 조정할 구체적 대안 없이, 한편으로는 재정 건전성 회복의 투사를 자처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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