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미국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5만여 명의 증언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남가주대학(USC)에 기증했다(24일자 A28면 참조). 무려 10만여 시간 분이다.
작년 11월에는 이스라엘 야드 바셈(히브리어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자’는 뜻)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웹 사이트(www.yadvashem)에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 320만 명의 명단과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2004년 11월 24일자 A29면 보도) 시작했다. 스필버그의 자료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면 야드 바셈 박물관의 자료는 사라져간 자들의 기록이다.
그 중 하나를 보자.
파일 번호 PO_1613: 다윗 에르게. “나는 다윗 에르게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았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시키고 싶다.” 1941년 19세의 나이로 독일군에게 총살당한 유대인 청년이 죽기 전 여자친구에게 보낸 엽서의 일부이다. 다윗은 본인의 소망대로 기억으로, 디지털 파일로 남게 됐다.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노력은 철저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1948년 건국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짓는 일이었다. 잊지 않음을 통해 아픈 과거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짐이었다.
생각이 절로 우리 현실로 미친다.
한 쪽에서는 “지금이라도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른 한 쪽에서는 “과거를 캐고 캐서 미래의 발목을 잡자는 말이냐?”는 항변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문제는 중대한 과거가 정말 어떠했는지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의 명령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유대인들의 역사 기억하기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까닭이다.
김이삭 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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