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다위로 섬이 흐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바다의 포효도 섬의 고요를 깨지 못한다. 오히려, 바다가 사나울수록 섬은 낮지만 그윽하게 존재의 장엄을 노래한다.
동양화단의 중진작가 한진만씨의 개인전 ‘화(畵)ㆍ도(島)ㆍ도(道)’가 갤러리상 기획전으로 26일부터 펼쳐진다. 지난 10여년간 작가가 발품을 팔아 답사한 한반도의 동서남해, 그리고 그 바다에 점정(點睛)한 듯 솟아오른 섬들이 화폭에 담겼다. 각각 ‘그림’과 ‘자연’, 그리고 ‘삶의 길’을 뜻하는 전시 명은 ‘대상 앞에서 선입견을 없애고 순수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작가의 겸손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보지않고는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요. 자연 속에서 수묵화의 모든 선들이 나오니까요. 근육을 쓰고 땀을 흘리며 직접 눈으로 확인한 자연의 경이를 마음이 말하는 대로 그려가다 보면 어느덧 물아일체의 순간에 도달하지요.”
전시에는 동해 묵호항에서 출발해 울릉도와 독도로 이어지는 뱃길 160여km를 따라가며 사계절의 변화를 담은 길이 30m의 화첩 ‘동해에서 독도’(2004)를 비롯해 모두 40여 점이 걸렸다. 칠흑 같은 바다와 뿌옇게 흐린 하늘을 가르는 섬(‘기다림’, 2005)은 화폭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하얗게 생략된 바다와 어둠 속에 점점이 불 밝힌 인가를 안은 섬(정.靜,2005)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대기속에 초연하게 떠있다. 작가는 “동양화에서 여백은 곧 추상의 의미이며 관객의 관조를 통해 저마다 다른 의미로 완성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돋보이는 것은 전통 수묵화의 물결 표현기법 연구를 통해 각기 다른 기법으로 그려진 바다의 이미지다. 섬을 휘감고 있는 바다는 하얗게 텅 비거나 짙은 먹으로 어둡고 깊다. 빛을 받으면 은빛 물고기떼처럼 황홀하게 출렁이고, 광폭한 날의 구름처럼 미쳐 날뛰며 섬과 하나로 어우러진다.
전시기획자 신혜영씨는 “다양한 필법으로 표현된 바다는 섬이 지닌 고유의 고독함으로 인해 관객을 더욱 깊은 사색의 세계로 초대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8일까지. (02)730-0030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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