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별빛만 영롱한 짙은 어둠속에서 수달 부부 황달이와 황순이가 천변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황달아, 어서 와! 아저씨야!”
황의삼(52ㆍ대전 중구 침산동)씨가 적막을 가르는 휘파람과 함께 수달을 반겼다. 황달이는 인사인양 힐끔거리더니 먹음직스런 향어가 퍼덕거리는 그물 먹이통으로 날렵하게 뛰어들었다.
“황순아, 어여 먹어! 그래 그래!” 황 씨가 담수호변에 매달아 놓은 그물 안 물고기 10여마리는 눈깜짝할 새 텅 비었다.
수달과 황 씨가 빚어내는 낯선 사랑이 아름답게 무르익고 있다.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이 안영동 뿌리공원을 마주한 유등천변 작은 담수호에 둥지를 튼 건 6년 전. 작은 놀이 보트를 띄우려 이 곳을 찾은 황 씨에게 처음 발견됐다.
그 즈음 인접 도로에서 어린 수달이 횡사한 참극을 기억해 낸 황 씨는 수달 살리기에 심신을 내맡겼다. 어둠이 밀려들면 하루같이 메기와 향어 등으로 푸짐한 식탁을 그물속에 차려 놓고 수달과 사랑을 키우고 있다.
금슬 좋은 황달이 부부는 인간의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올 여름 귀여운 새끼 2마리를 선사했다.
수달은 반경 18㎞ 안팎 거리를 이동하며 심야 사냥을 즐긴다. 유등천을 따라 유천동 서부시외버스터미널부터 침산동 상류까지 휘젓고 다닌다. 천변에 늘어선 식당의 수족관에 침입해 관상어를 해치우거나 뭍에 올라 거위를 꿀꺽 삼킨다.
수상 생태계 파수꾼 수달에게 가장 큰 장애는 오염원. 황 씨는 소 오리 떼가 득실거리는 상류 축사를 감시하는 자칭 1인 순찰대원을 자청했다. 비오는 날이면 극성인 축산 폐수 무단 방류를 막기 위해 뜬 눈으로 지샌 밤이 숱했다. 낚시꾼 밀어내기, 천변으로 들이 닥치는 자동차 가로막기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수달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는 작은 희망은 마침내 대전시를 흔들었다.
대전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체계적으로 살리기 위해 이르면 내년 중 이 일대를 야생 동ㆍ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동물학자 이일범 박사(49ㆍ대전동물원 동물팀장)는 “수달은 금강 상류원인 전북 무주쪽에서 안전한 서식지와 먹이감을 찾아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먹이감 확충 등 서식 환경을 가꾼다면 평균 4마리 아래 꼴로 뭉쳐 지내는 수달의 무리를 도심에서 더 많이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최정복기자 cj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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