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담 중에 “썩어도 도미, 죽어도 남자”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는 남자가 한번 뱉은 말은 죽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일본인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은 그런 속담에 들어있는 일본의 미학을 이용한 정치적인 술수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일본인들이 고이즈미 총리의 행동을 꾸짖기보다는 일본의 미학이라고 미화하면서 동조하는 모습을 보면 일본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법원의 위헌 판결뿐 아니라 외교적 파장을 고려한 나머지 일반인 자격의 참배를 가장한 어처구니없는 쇼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는 일본인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고,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 것으로 한국과 중국에 대해 배려를 하였다고 이해한다. 실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이다.
현재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국내 정치의 이해에만 몰두하면서, 자신의 신념에 눈이 어두워 국제 관계에서의 일본의 위치와 외교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우(愚)를 범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에 감성적 영합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표적 보수 언론인 요미우리신문조차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관계를 무시한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이즈미 총리가 국내외적인 비난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일본 국민이 고이즈미 총리의 행동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경기 침체의 반작용으로 일본 사회 내에서는 강한 일본을 재건해야 한다는 내셔널리즘적인 열망이 강하게 대두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외교 현안들에 반영되면서 한국의 대 일본 반성과 사죄 요구에 대해 ‘일본은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나’라는 반감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것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와 비교해 볼 때 일본의 여론이 긍정적이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둘째,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공약에 대해 벌써 다섯 번이나 참배를 하면서 어떠한 역경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그가 약속한 공약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한국이나 중국이 이에 반발하면 할수록 자신의 고집대로 강행한다는 이미지를 일본 국민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 결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일본의 국제적인 관계나 국익이 우선되기보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결행 여부에 따른 정치적인 흥미 거리로 전락하게 되어 수상의 개인적인 인기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 전략에 의해 지속되어온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의 국익뿐만 아니라 동북아 국가간의 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커질수록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는 유지될 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도 이전과는 달리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현재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 전략은 일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보수 우파들의 내셔널리즘과 포퓰리즘이 결합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그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감정적인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다.
●차분한 외교적 대응이 효과적
지금이 우리의 합리적인 외교적 대응과 다각적인 채널을 이용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더 이상은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본 국민을 설득하여 고이儲?총리를 포위 압박하는 것이 더욱더 효과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상회담 취소라는 카드를 섣불리 내기보다는 일본의 대응을 보면서 일본 국민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가지는 국제적인 문제점을 정확히 전달하는 대중 외교가 필요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