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21일 미국에 머물고 있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안기부 ‘X파일’ 수사와 관련한 검찰 출두를 미루고 있어 2차 소환통보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홍 전 대사에게 1차 출석 통보를 한 지 3주가 지났는데 귀국하지 않고 있어 이날 다시 소환통보를 했다”며 “날짜를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출석해서 조사에 응하도록 요구했다”고 말했다.
홍 전 대사는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인 ‘X파일’에 1997년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한 인물로 등장한 것과 관련해 참여연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현재 홍 전 대사의 조기 귀국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중앙일보 고위관계자도 “홍 전 대사의 거취는 회사와는 상관이 없고, 그 자신만 알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홍 전 대사가 지난달 23일 대사직을 그만두면서 “남은 업보가 있다면 내가 다 책임지고 회피하지 않고 가겠다”고 공언한 만큼 검찰 수사를 마냥 거부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검찰이 홍 전 대사에게 검찰 출석을 독촉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은, 그가 소환 거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사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배경에 깔려 있다.
홍 전 대사는 지난달 30일 1차 소환 통보를 받은 뒤 “주변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귀국을 미뤄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20여일이 지나도록 홍 전 대사가 출석 날짜를 알려오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홍 전 대사가 2차 소환통보에도 응하지 않으면 검찰이 강제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방송 인터뷰에서 홍 전 대사 등이 장기간 도피성 해외체류를 할 경우 외국 당국과 사법공조를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외국과의 사법공조를 통한 강제 송환은 시일이 오래 걸리고, 홍 전 대사가 언론사 사주라는 점에서 검찰도 강제조치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수사팀이 홍 전 대사의 결심만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검찰이 이번 조치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처럼 복잡한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홍 전 대사에게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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