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 자락의 고향 마을에 천주산(天柱山)이란 산이 있다. 해발 836㎙에 불과한 봉우리지만 힘차게 솟은 모양이 ‘하늘기둥’이란 이름과 어울린다. 그런데 이 이름으로 이 산을 기억하는 고향 친구는 드물다. 어릴 때 모두들 ‘붕어산’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말해야 바로 알아 듣는다.
남쪽으로 이삼십리 떨어져서 보면 꼭대기가 꼭 붕어가 입을 벌린 형상이다. 사방의 크고 작은 산 이름이 다 그런 식이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배암산’, 그 뱀을 노리는 황새 모양을 한 ‘황새바위’, 곧게 쭉 뻗은 ‘장대산’ 등이다.
■서울의 북한산을 ‘삼각산’(三角山)이라고 부른 것도 백운대 양쪽으로 인수봉과 만경대가 솟은 형상이 마치 세 개의 뿔이 돋은 듯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땅 이름과 마찬가지로 북한산의 명칭도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달랐다.
마치 등에 아이를 업은 듯한 인수봉의 모습에서 ‘부아악’(負兒岳)이란 이름을 얻었고, 남북으로 맞붙은 고구려와 백제의 주전선이 되는 바람에 횡악(橫岳)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려 때는 주로 삼각산으로 불리고, 화산(華山), 화악(華嶽)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의 문헌에도 대부분 삼각산으로 나온다.
■그렇다고 ‘북한산’이란 이름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8년(557년)의 ‘신주(新州)를 없애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했다’는 기사의 ‘북한산’은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땅이름이었다.
그러나 청(淸) 나라와의 사이에 긴장감이 감돈 숙종 1년(1674년) 조정에서 벌어진 ‘북한산에 성을 쌓자는 논의’에서 “북한산은 산세가 험하고, 견고하다”는 등으로 여러 차례 나오는 ‘북한산’은 이미 산 이름이다. 그것이 당시 조정 관료의 착각이었다면 일반인들의 착각은 더했을 것이다.
■시민단체가 일제의 지명왜곡 사례로 ‘북한산’을 수시로 들더니 산림청이 ‘삼각산’을 되찾겠다고 나섰다.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이 자못 거창하다. 이미 국민 생활에 깊이 침투한 이름이고, 지도와 안내문 등을 모두 바꿔야 하는 등의 혼란과 불편, 비용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흔히 ‘지명왜곡’의 근거로 드는 조선총독부의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1915년)에는 이렇게 적고 있을 뿐이다. ‘북한산은 경성의 북방에 솟아있는 조선의 명산으로 삼각산이라고도 하고 화산, 또는 화악이란 이름도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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