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아태평화위가 20일 내놓은 담화는 현대에 대한 섭섭함과 분노로 가득하다. 말미에 협상의 여지를 시사하는 표현도 있으나 전반적인 기류는 대단히 강경하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공식 입장을 처음 제시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역설적으로 대화와 해결의 실마리가 생겼다는 분석으로, 정보에 바탕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기대가 많이 섞여 있다.
담화는 우선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을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을 잇는 대북사업가로 평가하며 그를 축출한 현대와 현정은 회장의 조치를 신의 없는 배신으로 규정했다. 담화는 “김윤규를 제거함으로써 결국은 현대그룹의 창업자이며 북남 경협의 개척자인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마저 욕되게 했다”고 주장했다.
담화에는 북한이 화를 내는 이유가 잘 드러나있다. “현 회장이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 개성과 백두산관광 독점권까지 얻어놓고 돌아가자마자 함께 접견한 김 전 부회장의 목까지 뗀 것은 배은망덕”이라는 대목이다. 김 전 부회장의 축출을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비례(非禮)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도 제기했다. 담화는 현 회장과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친인척 관계를 거론하며 “미국과 한나라당의 검은 손이 이번 사태에 깊숙이 손을 뻗치고 있다는 설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 회장과 한나라당 K 의원의 근친관계를 음모론의 근거로 제시하는 비약된 논리로 현대와의 단절 명분을 제시한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북측은 현대의 개성관광, 7대 사업 독점권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인연이 깊은 정주영, 정몽헌 전 회장이나 김 전 부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궤도에 오른 남북 협력사업을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는 진의를 드러낸 대목이다.
그러나 북측은 담화 마지막 부분에서 여지를 남겼다. 김 전 부회장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던 현대 인사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면 금강산관광 부분은 현대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를 현대와 대화를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북한이 제시한 것은 금강산관광 뿐이다. 개성이나 백두산관광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 회장이 이를 그냥 수용하기도 쉽지 않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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