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주요 뉴스나 논쟁의 한 가운데 선 인물들을 전화로 불러내 생동감 넘치고 때로는 공격적인 인터뷰로 청취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MBC 라디오(95.9㎒)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23일 방송 5주년을 맞는다. 방송가에 5돌맞이 정도야 흔한 일이지만 이 프로그램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요즘 사회 흐름을 읽으려면 새벽 라디오를 들어라”는 말을 낳은 이른바 ‘라디오 저널리즘’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첫 방송부터 줄곧 진행해온 손석희 MBC 아나운서국장은 최근 시사저널이 실시한 각계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과 ‘신뢰성 있는 언론인’ 모두에서 1위에 올라 이래저래 ‘시선집중’을 받고 있다.
“생일도 잘 챙기지 않는 편인데…”라며 쑥스러워 하던 손 국장은 5돌맞이 소감을 묻자 “인터뷰 내용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비난도 적잖이 받았다.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뜻이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통상 라디오에서는 시사 문제를 패러디 한다든가 돌려서 다뤘는데, ‘시선집중’은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걸 통해서 새로운 라디오 시사 저널리즘을 만들어왔다는데 나름대로 보람을 느낍니다.”
그가 생각하는 ‘라디오 저널리즘’의 요체는 뭘까. “우선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접근이 쉽다는 것입니다. 당사자도 주어진 시간 안에서는 편집, 즉 재가공의 우려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날 것’ 그대로 전하는 건데, 심층 분석이나 대안 제시보다는 다양한 시각에 의한 문제제기를 통해 청취자들이 주요 이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나름대로 판단하게 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인터뷰 대상에게 ‘날 것’이란 때로 엄청난 부담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인터뷰 대상자로 ‘당사자’를 고집해온 터라, 섭외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 손 국장은 “아주 가끔 직접 섭외를 하기도 하지만, PD와 작가에게 맡기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섭외에 관여하면 제가 즐겨 표현하는 ‘전방위적 비판’을 하기 어려워져요. 인터뷰 대상자가 원하면 질문의 방향을 미리 알려주기도 하지만, 중심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궁금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캐묻는데 둡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불편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평상시 인간관계를 잘 만들지 않습니다. 되도록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손 국장은 인터뷰하고 싶은 대상으로 대통령을 꼽았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청와대에 꾸준히 요구해왔어요. 꼭 잘 차려진 TV 스튜디오에 나와서 목에 힘주고 얘기할 필요 없지 않나, 전화로 청취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형식에 구애 받지 말고 한 번 대화해보자, 그렇게 말했지만 청와대에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시선집중’은 24일부터 오전 6시대 방송을 10분 줄이는 대신, 인터뷰가 나가는 7시대 방송을 5분 늘리기로 했다. 좀더 많은 시간을 인터뷰에 할애하기 위한 것. 손 국장은 이와 더불어 언론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의제설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단다. “사실 조심스러워요. 의제설정이란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제는 하루하루 사안을 쫓아가는데 그치지 않고 긴 안목에서 흐름을 잡아가는 기능도 필요하다 싶습니다.”
손 국장은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에 오른 데 대해서는 “권위적인 느낌이 든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신뢰성 있는 언론인으로 꼽힌 것은 늘 추구하는 바이기도 해 매우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친 김에 선거 때마다 말이 나도는 정계 진출 의사를 물었다.
그의 답은 단호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제 이름이 여기저기서 거론됐어요. 안되겠다 싶어 ‘시선집중’ 방송 말미에 정치 안 한다, 이 생각은 변함 없을 것, 이라고 말했어요. 일종의 ‘시건 장치’를 걸어둔 거죠. 그 약속대로 정치를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손 국장에게 요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24일부터 단행되는 MBC 가을개편에서 그가 진행하는 TV 토론 프로그램 ‘100분 토론’이 오락 프로그램에 자리를 뺏기고 밤 12시대로 밀려난 것.
잇단 악재와 더불어 전 장르에 걸친 시청률 부진에 시달려온 MBC로서는 ‘고육지책’이지만, 가장 공영적인 토론 프로그램을 밀어낸 자리에 가장 상업적인 오락 프로그램이 들어온 것에 대해 그는 “솔직히 속 상하고 참담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내부 다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한 채 “이른 시일 내에 MBC의 프로그램 시청률이 정상화 하고 ‘100분 토론’도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희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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