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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30) 전쟁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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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30) 전쟁과 세상

입력
200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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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프랑스 화가 지로데 트리오종(1767 - 1824)의 ‘대홍수(deluge)’ 그림<사진> 을 본다. 온 가족이 매달린 나무 가지는 휘어지다 못해 부러진다.

홍수의 거센 물결은 아이를 곧 삼킬 기세다. 필사적으로 엄마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매달린 아이. 캄캄한 하늘에 마른 번개가 번쩍인다.

혼절한 듯 등에 업힌 늙은 아버지는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의식이 또렷해 보인다. 팽팽하게 긴장한 몸과 발가락, 숨이 막힐 정도로 억세게 아들의 목을 휘감은 오른손, 돈이 들었음직한 붉은 주머니를 꼭 움켜쥔 왼손, 볼 수록 야속하다.

한 가정의 가장(家長)의 모습 같기도 하고, 21세기 초반 우리나라의 현실 같기도 하다. 아버지로 상징된 과거를 등에 업은 사내는 현재와 미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힘이 다해 이제 아내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사내의 처절한 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홍수나 전쟁이나 모두 휩쓸어가기는 마찬가지다. 그 앞에 서면 절망스럽기도 마찬가지다.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혁명 정신을 드높이 앞세우고 유럽의 전쟁터를 누비던 나폴레옹은 이 그림이 완성되기 2년 전인 1804년에 황제로 즉위했다.

혁명의 영웅 나폴레옹을 위해 작곡했던 ‘제3교향곡 영웅(Symphonie Eroica)’,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악보를 찢던 작곡가 베토벤이 느낀 비통함을 화가는 그림으로 남겼나 보다. 화가는 이 그림을 통해 전쟁 앞에 무너지는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한반도 전쟁

우리가 왜 전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전쟁을 이해함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를 사전에 관리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불쑥 나타나던 전쟁의 기억과 공포가 우리의 삶을 재단하는 중요한 자(尺)였다.

전쟁이라면 늘 남한과 북한간의 전쟁을 머리에 떠 올린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함으로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오랜 가상 시나리오가 언젠가는 불행하게도 현실로 나타날 것 같은 불안을 안고 살았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이 작전계획 5026, 5027, 5029 및 5030 등으로 집약되고 그 일부가 언론에 공개됐다. 특히 작전계획 5027-04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예방공격을 담고 있어 논란에 휩싸였다. 한반도는 미국 지도자의 상황 판단과 인식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의 경제적 파탄 그리고 남북 대화와 화해 분위기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많이 완화됐다. 심지어 북한은 더 이상 실질적인 위협이 아니라는 의식도 나타났다. 전쟁이라는 두려운 상황을 외면하고 싶은 잠재의식과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군사적 의미에 물음을 던지게 됐고, 미국이 추진중인 군사변환 및 군사력재배치 계획과 맞물려 우리의 국방과 안보문제에 이전과는 다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만 전쟁이 없으면 우리나라는 그대로 평화의 시대를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

전쟁, 몇 가지 원인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서로 상대국가의 문화, 관습, 의도 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전쟁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오해가 전쟁으로 치닫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상대국가와 어떤 현상에 대한 오해가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역사적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전쟁은 궁극적으로는 국내정치와 연결되어 있다. 어느 정부든 권력 유지의 기반은 국내정치이며 정권유지가 정권의 중요한 목표이다. 전쟁도 그 수단의 하나로 사용된다.

또한 설득과 위협,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나 봉쇄를 통해 상대 나라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을 통해 강제로 변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라던 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20세기 역사를 살펴보면 먼저 전쟁을 시작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시달리며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폭탄으로 도시 전체를 날려 버리거나 어떤 나라의 항복을 받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법과 질서를 다시 세우고 평등한 고용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군대를 투입하여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이나 관용의 문화를 창조할 수는 없다.

전쟁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 들인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를 거쳐 정치의 연장, 정책의 수단으로써 전쟁하던 시대도 지냈다.

이제는 손자병법에서 말한 것처럼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 최선의 전쟁이라는 시대가 됐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쟁은 피해야만 하는 시대로 변했다. 핵무기 확산으로 자칫 인류는 공멸(共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양상

전쟁의 기본적 전력은 보병과 기갑이었다. 주로 2차원의 평면 위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후 눈으로 볼 수 없는 위치에 떨어져 있는 적까지 대응하기 위해 포병과 곡사포가 전장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전쟁은 2차원의 전장(戰場ㆍBattle Field)에서 3차원의 전투공간(戰鬪空間ㆍBattle Space)으로 확대됐다. 이후 3차원 공간 안으로 공군 전력과 해상, 수중의 해군 전력이 들어왔다.

더 먼 거리에 있는 적을 제압하기 위해 로켓과 미사일이 필요했고 심지어는 다른 대륙에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도 등장했다.

거리가 멀수록 적을 탐지하는 능력과 미사일이나 포탄을 표적까지 정밀 유도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한편으로는 적을 살상하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 마이크로웨이브(HPM) 등 비살상(非殺傷ㆍNon-lethal)무기, 적의 통신과 무기체계를 교란하기 위한 전자무기 등이 개발되고 있다.

이제는 공중 해상 수중 그리고 육상의 모든 전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전쟁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전쟁무기체계들을 정보 지휘 통신 망으로 연결 운영하는 네트워크 중심전력(Network-Centric Warfare)으로 발전한다.

2004년 4월, 미국 정밀타격협회 연례계획검토보고회가 있었다. 미국의 차세대 합동타격전투기(JSFㆍJoint Strike Fighter) 프로그램 책임자인 잭 허드슨 미 공군 소장이 계획과 진행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전투기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토의됐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면서 자란 지금의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즈음에 JSF 계획은 완료되는 데 그 때면 그 젊은이들이 최신 전자과학 무기들을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다룰 것이라고 그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오락실에서 전쟁을 재미로 게임으로 즐기는 저 아이들, 저들이 미래에 초정밀 전쟁을 담당할 전사들이란다. 저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듯 전쟁을 치러 낼 것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래 전쟁을 구상하는 모습에 소름 끼친다.

2004년 10월 또 다른 세미나에 참가했다. 미국이 수행한 이라크 전쟁을 분석하는 자리였다. 초정밀 무기에 의한 정밀타격은 있었지만 공격하지 말아야 할 목표물을 타격해 이라크 저항군이 비대칭 작전을 벌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고 미국의 실수를 지적했다. 이른바 전쟁의 ‘CNN 효과’를 가볍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된다.

평화

인간은 평화를 갈망하지만 그 수단으로 전쟁을 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전쟁을 영원히 없애려고 전쟁을 시작한다는 말은 정책의 실패에 대한 공공연한 고백이다.

전쟁은 늘 멋진 구호와 함께 시작된다. 오늘날 침략전쟁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듣는다. 무엇을 말하는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메시지다.

옛 농부는 하늘을 보면 하루 날씨의 징조를 읽었다. 지금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읽고 있는지. 바람이 전해주는 대홍수를 예감한다. 그림의 사내는 과연 아내와 자식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의 우리나라는 20세기의 한국보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인가?

■ 용어풀이

CNN 효과 = CNN이 전장의 모습을 전세계에 방영하면서 생긴 현상에 대해 부쳐진 이름이다. 민간인 거주지역에 대한 폭격으로 울부짖는 부녀자와 어린이, 특히 어린이나 부녀자들이 피 흘리며 죽거나 다친 모습, 역사적 기념물이나 문화재의 파괴장면 등이 영상화면으로 전 세계에 퍼지면서 국제 반전 운동 강화, 저항 및 연대의식 고취, 전쟁 주도국에 대한 반감의 확산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윤석철객원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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