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생활 25년 만에 천직을 만남 셈이지요. 제 노래는 아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겁니다.”
강원 춘천의 라이브 카페 가수 박산이(43)씨는 11월만 되면 어김없이 통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겨울마다 열리는 그의 ‘이웃 돕기 거리 음악회’를 기다리는 팬들 때문이다. 한 해 두 해 시작한 것이 벌써 7년째. 출연료는 없다.
“매섭기로 유명한 강원도 추위 때문에 손이 부르트기는 예사지요. 어떤 날은 입도 제대로 벌릴 수 없어요. 그래도 해마다 때만 되면 기다리시는 분들 생각에 그만둘 수도 없답니다.”
그가 겨울에 춘천, 강릉, 원주, 속초 등 강원도 전역을 돌며 벌어들인 수익금은 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이나 소년ㆍ소녀가장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서울 토박이인 박씨가 춘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사실 그는 앨범까지 발표한 정식 가수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음악 공연에서 드럼 치는 모습을 본 이후 그는 음악에 미쳐 살았다.
고교를 졸업한 후에는 그룹사운드를 조직해 전국의 밤무대를 돌며 하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불렀다. 하지만 수시로 바뀌는 멤버 탓에 한번도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없었던 것이 가슴 한편에 응어리로 남았다.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려던 차에 춘천에 사는 지인한테 라이브 가수로 활동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생활비나 벌자고 시작했지요. 그런데 공기 좋고 인정 많은 환경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면서 음악에 대한 의욕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더군요.”
얼마쯤 지나자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외지에서 일부러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자선 공연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고 이를 계기로 박씨는 ‘노래하는 천사’로 변신했다.
“한 번은 리어카를 끌며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아저씨가 꼬깃꼬깃 구겨진 5,000원짜리를 모금함에 넣는 거예요. 하루벌이였을 텐데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자선 공연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그는 또 매달 한 차례 춘천교도소와 의정부교도소를 번갈아가며 재소자를 위한 공연도 하고 있다. “재소자들을 통해 ‘노래의 힘’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정겨운 노래 한 곡에 꽁꽁 얼어 있던 그들의 마음이 눈 녹듯 풀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지요.”
박씨는 ‘교정의 날’인 28일 법무부 장관 표창도 받는다.
미혼인 그에게 결혼 계획을 묻자 “봉사활동을 등한시할까봐 결혼할 마음이 안 생긴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즐겨 부르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 ‘사랑이야말로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구절이 있지요.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나눔’을 실천해 보세요.”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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