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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최신작 '맨드라미 꽃' 극단 골목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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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최신작 '맨드라미 꽃' 극단 골목길 공연

입력
200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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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골목길의 ‘맨드라미 꽃’은 시대와 길항하기로 작정한 듯 꼬릿꼬릿한 삶의 풍경을 천연덕스레 풀어 놓는다.

“난 늙었다. 넌 젊고 예뻐. 내가 받는 하숙비보다는 네가 이런저런 짓거리로 뜯는 돈이 더 많아. 돈 줄 테니 뽀뽀하자는 놈, 노래방 가자는 놈, 심지어 함께 그 짓 하자는 놈, 벼라별 놈들이 다 있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파가 젊고 예쁜 주혜에게 하는 말이다. TV의 서민 드라마가 아니다.

삶이 힘들어 자살을 꿈꾸는 남자, 보디 가드 등을 해가며 먹고 사는 남자, 결코 주목 받지 못 하는 노인네 등은 이 시대가 제쳐버린 삶들이다. 도시 공간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내 주지 못 한다. 무대는 제각각 떨어져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욕망을 소비해 가는 도시 사람들의 현실을, 전혀 감정의 개입 없이 보여준다.

하숙비를 받아 빨래를 하고는 빨랫줄에 너는 주혜의 대사는 시간이 정지된 이 변두리 동네의 현실을 적확하게 전달해 준다. “흠흠… 아무리 빨고 삶아도 할머니 옷에서는 지린내가 나죠. 고린내는 우리 아빠, 맨날 누워서 대소변 봐요. … 흐릿한 담배 냄새 나는 건 내 옷, 그리고 … ”

원로 극작가 이강백(58)씨의 36번째 작품으로 8월 탈고된 ‘최신작’이다. 풍자와 우화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련의 작품들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 알레고리를 탈피했다”며 이 연극에는 철학도, 부조리도 없음을 강조했다.

이씨는 “‘꽃 같지도 않은 푸르딩딩한’ 맨드라미꽃은 따져보면 명확한 동기나 이유 없이 이어져 가는 우리 인생을 가감없이 상징한다”며 “서로 단절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그냥 그대로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혜 역을 맡은 주인영(27)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 비슷한 슬픔을 가진 사람들의 아픔과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제작비 등을 문제로 연극 무대가 1인극이나 2인극 등 축소 일변도로 흘러 가는 요즘, 10명이라는 대부대가 출연해 펼치는 집단 앙상블은 그것만으로도 신선한 감흥을 자아낸다. 연극의 주 언어를 경상도 방언으로 치환한 연출자 박근형씨의 선택도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데 한몫한다.

노옹 역을 맡은 권병길은 희극적 연기로 연습실을 뒤집어지게 했고, 명확한 발음에 선명한 동작선을 긋는 최정우는 비련의 아웃사이더를 능청스레 연기한다. 극단 목화에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던 김세동은 콩글리시를 목청껏 외쳐대는 건달 장팔로 나와 예전의 관록을 상기시킨다.

맨드라미꽃은 누추한 일상에 포위된 주혜를 버텨내게 하는 힘이다. 한참 노파와 입씨름을 하고 나온 주혜, 담장 밑으로 가더니 숟가락으로 밥을 떠 맨드라미 뿌리에 묻어 준다. 그리고는 맨드라미에게 말한다. “많이 먹고 많이 커라.” 아르코예술극장 화~금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02)762-0010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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