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를 계기로, 수사지휘권에 대한 여야 정치권과 검찰 등의 입장이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달라진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천 장관은 물론이고 정치권도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서 말을 바꿨고, 검찰 역시 입장이 달라진 측면이 있다. 당연히 “각자 유리한 관점에서만 수사지휘권 문제를 바라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천 장관은 의원시절과 지금의 입장이 분명히 달라졌다. 천 장관은 야당인 국민회의 의원 시절인 1996년 10월4일 대검 국정감사에서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8조의 존재이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무장관은 일반적으로 검찰총장만을 지휘ㆍ감독하며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장관은 2003년 10월6일 대검 국감에서도 “송두율씨 처리는 검찰이 누구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법무부장관(강금실)이 ‘송씨가 설사 김철수라고 해도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한 것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장관의 개입은 옳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천 장관은 18일 법사위에서“소신을 바꾼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때와 달리 지금은 검찰이 환골탈태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신을 바꿀 만큼 상황이 변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 열린우리당 주요 인사가 속해있던 96년 당시 국민회의의 신기남 의원 등 112명이 ‘수사지휘권 폐지’를 담은 법 개정안을 낸 것도 현재 여당의 태도와는 전혀 다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96년 여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이 지휘권 폐지를 담은 야당의 개정안에 대해 반대해 개정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또 같은 해 10월28일 국회규제개선특위의 ‘검찰청법ㆍ경찰법 개정방향 공청회’에서 신한국당 이사철 의원 등은 “법무장관이 검찰업무에 대한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데 지휘권도 없다면 안 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며 지휘권 유지 필요성을 주장했다.
검찰 역시 비슷하다. 96년 대검 국감에서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은 “검찰업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고 있는 법무부장관에게 책임행정 측면에서 지휘ㆍ권한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휘권 옹호 취지로 답변했다.
같은 해 국회 공청회에서도 검찰측 진술인으로 나온 형사정책연구원 이훈규(현 창원지검장) 부원장은 “지휘권을 삭제하면 자칫 검찰 파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법대 장영수 교수는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의 논리가 이처럼 달라진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정당화하고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논란의 주체들이 서로 말이 바뀌었다고 공격하는 소모적 논쟁보다 각자의 입장이 왜 바뀌었고, 현 시점에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담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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