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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필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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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필통 이야기

입력
200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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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뿐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도 대개 비슷할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간 다음 방에 들어가 보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숱하게 연필이 나오고 볼펜이 나오고 지우개가 나온다.

우리는 다섯 형제가 함께 초중고등학교를 다녀 공동으로 쓰는 책상 위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내 연필 내가 안 챙기면 그게 어느 결에 다른 형제의 필통 속으로 들어가 숨을지 모를 일이었다.

우선 학기 초에 어머니가 한 묶음 사와 몇 자루씩 나누어주는 연필들이 네 연필 내 연필 모두 젓가락처럼 똑 같다. 지우개가 달린 꼭지 부근에 ‘이것은 내 연필’ 하고 칼로 흠집을 내 표시를 한다 해도 그거야 흠을 슬쩍 지우거나 흠 하나를 더 표시하고 내 연필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좌우지간 다섯 형제 가운데 내 필통 속이 제일 빈약했다. 어머니가 처음 학용품을 나누어 줄 때만 연필, 칼, 지우개 등이 제 짝을 갖추고 있지 벌써 일주일 지나면 필통 속에 연필 한 자루만 달랑 남곤 했다.

속이 제일 꽉 찬 필통은 막내의 것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필통의 연필을 꺼내 쓴 다음에도 그걸 꼭 막내에게 돌려주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집엔 막내를 이길 형제가 아무도 없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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