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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 비밀의 열쇠 '힉스' 실체 잡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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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 비밀의 열쇠 '힉스' 실체 잡힐까

입력
200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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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 비밀의 열쇠인 힉스는 누구 손에 잡힐까.”

우주의 생성이나 입자의 근원을 규명하기 위해 어려운 이론을 풀어놓는 물리학자의 뒤편에는 “저 학자의 주장이 맞는지 어디 한번 확인해보자”고 달려드는 실험 물리학자들이 있다.

‘질량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문제를 규명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1964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과학자 피터 힉스가 제기한 ‘물질이 질량을 갖도록 하는 기본입자(힉스)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지금 엄청난 규모의 실험기기가 건설되고 있다. 바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가속기’(LHC·Large Hadron Collider)다.

가속기 건설에 속도가 붙으면서 고려대 한국검출기연구소(소장 박성근 교수)가 제작ㆍ납품한 검출기의 장착 작업도 시작됐다. 최근 서울에 모인 관련 학자들은 한국의 높은 기술 수준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질량의 비밀 밝혀지나

지난 10~12일 한국검출기연구소가 주최한 ‘제6회 국제 저항판검출기(RPC) 워크숍’에 참가한 10개국 60여명의 과학자들은 한국검출기연구소가 제작한 ‘전방 저항판검출기’의 효율에 혀를 내둘렀다.

1997년 불모지에서 검출기를 만들기 시작한 박성근 교수는 개발 초기 이탈리아의 한 검출기 제작 기업을 찾아갔다가 “로열티 내고 기술을 사가라”는 말을 듣고 발을 돌려야 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워크숍에 참가한 이탈리아 과학자는 제작공정을 둘러본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검출기를 만들지만 이처럼 효율이 높은 검출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97년부터 1년에 걸쳐 단 1개의 검출기를 만든 박 교수는 2002년 CERN의 전방 저항판검출기 책임자로 선정돼 지금까지 총 500개의 검출기중 350개를 납품했다.

거대 강입자 충돌가속기는 원 둘레가 27㎞에 달하는 매머드급 실험기기다. 지하 100m 지점에서 건설되고 있는 이 원형 실험장치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걸쳐있다.

이처럼 거대한 가속기를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속기가 커야만 입자를 더욱 빠른 속도로 가속시킬 수 있고, 그래야 고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하는 입자를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자 충돌을 위한 실험장치

거대 강입자 충돌가속기는 양성자를 거의 빛의 속도(99.99999%)로 가속시켜 충돌을 일으킨다. 이 충돌 반응을 통해 다양한 입자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론물리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힉스는 충돌 후 ‘10의 25제곱분의 1초’ 동안만 존재했다가 곧 4개의 뮤온 입자로 붕괴된다. 힉스를 직접 보기는 어렵지만 뮤온을 검출하면 힉스의 발자취를 보게 되는 셈이다.

뮤온을 검출하기 위해 가속기에는 여러 실험장치가 장착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박 교수팀이 만드는 전방 저항판검출기다. 이 검출기는 그저 평범한 사다리꼴 모양의 금속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금속판을 2㎜ 간격으로 세워 그 사이에 프레온 아르곤 등을 혼합한 가스를 채워넣으면, 뮤온이라는 입자가 지나가면서 생성되는 미세한 전하량을 검출하게 된다.

미세한 전하량을 정확히 측정하면서 무의미한 신호(잡음)는 가려내고 튼튼한 검출기를 만드는 데 꼬박 8년이 걸린 것이다. 질량의 근본 입자를 찾는 험난한 과정에는 이처럼 기름 치고 나사 조이는 과정이 빠지지 않는다.

44년만의 검증 실험

‘물질이 질량을 갖도록 하는 기본입자(힉스)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피터 힉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수년 전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힉스가 없다는 데 100달러를 걸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리학계가 이 같은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고에너지의 실험 밖에 방법이 없는데, 세계 각국의 실험 물리학자들은 힉스의 존재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결국 ‘거대 강입자 충돌가속기’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그로스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박 교수에게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론물리학자들이 말로만 떠드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2007년 CERN의 충돌 실험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물리학자들은 한 두명이 아니다. 박 교수와 호킹 박사, 두 사람중 한 사람이 미소지을 날이 멀지않았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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