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피츠제럴드(1896~1940)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1920년대 재즈시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순정과 열망, 비애의 초상이었다면, 강도하씨의 만화 ‘위대한 캣츠비’는 자본의 식민화가 인간 인격 인성에까지 스민, 그래서 순정과 비애마저 우스워져버린 이 ‘쿨(cool)한’ 세상의 몇 안 남은 낭만의 풍경화라 할 만하다.
지난 해 8월 인터넷 연재를 시작한 그의 만화는 대단원까지 이제 단 2회를 남기고 있다.
스물 여섯 해를 산 ‘야망 없는 날백수’ 캣츠비의 순정, 캣츠비를 사랑하지만 남루한 현재와 내일이 싫어 돈 많은 남자를 선택하는 ‘페르수’, 캣츠비를 사랑하는 새 연인 ‘선’, 캣츠비의 룸메이트이자 쿨한 인생 상담자이지만 종국에는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악연의 ‘하운두’….
철거가 예정된 달동네 골목들과 옥탑방을 무대로 펼치는 이들의 삶과 사랑에 우리가 흔쾌히 투항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랑 잃고 술김에 껴안은 여자의 향기, 그 위안에 공감했던 기억?- 외로움을 달래는 건, 질펀한 섹스가 아냐…, C급의 냄새.’
‘지리한 관계의 일상과 너절한 질서에 대한 반역의 정염?- 예상했겠지만 내 결혼은 처음부터 꼬였어… 그저 고만고만한 필요성… 역겨운 필요성.’
‘아니면,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환멸에의 끌림?- 어리숙한 캣츠비가 지옥에 발을 들여놓으셨다고봐… 연애는, 지옥이거든.’
어쩌면, 수백 대 일의 입사경쟁률처럼 막막한 미래, 거기서 실낱 같은 희망의 전언- 어차피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1초야. 현재와 미래, 현재와 과거의 경계도 1초!- 에 기대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옥의 쓰린 형벌 같은 사랑에 대한 본능적 갈증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의 만화 ‘위대한 캣츠비‘는 그런 강렬한 삶과 사랑 이야기다.
작가는 87년 ‘보물섬’으로 데뷔했고, “이제 젊음에서 살짝 비껴 난” 나이(38)다. 그래서 지나쳐 온 젊음에 대해 얘기하고 싶더라고 했다. “돌아보는 자가 경험하는 ‘미련’이라는 감정, 그 끈적거리고 ‘웜(warm)‘한 성장통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랑의 본질은 결코 ‘쿨’할 수 없잖아요.”
돈에 빼앗긴 옛 사랑을 찾기 위해 악착같이 벌어 성공한 예전의 개츠비는, 그래서 모든 것을 전과 같이 만들어 놓으면 옛 사랑이 돌아오리라 믿었던 그의 사랑은, 끝내 좌절하고 죽어서도 배신 당한다. 하면, 이 어리벙벙한 순정남 캣츠비와 그의 사랑은? 작가는 따듯한 결말을 암시했다. “나뉘거나 떠나는 것보다 수용하고 포용하는 게 더 힘들잖아요. 캣츠비는 위대합니다.”
‘캣츠비’는 “배경 스스로 드라마를 만드”는 작품이다. 작가는 배경 장면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달동네를 누볐고, “골목을 돌다, ‘캣츠비’와 맞닥뜨려 심장이 멎을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이미 출간된 단행본(애니북스 발행) 1, 2부에 이어 내달까지 5권이 완간되고,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인디컴시네마).
그는 이번 작업을 3부작으로 이어갈 참이라고 했다. “제 나이의 남자에게 찾아온 위험한 열정(‘로맨스 킬러’)과 상처 없이 자신을 해체ㆍ분리하고 재조립하기 즐기는 20대들의 이야기(‘큐브릭’)를 그릴 생각입니다. 그러면 저도 40대가 될 테고, 그 땐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겠죠.”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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