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성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인사에 대한 법적 제재는 과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일까?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쪽은 대체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 사회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또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과거와는 달리 그것을 법적으로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일견 지극히 상식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그 주장의 이면에는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라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실존적으로나 무한정 허용될 수는 없는 것이 인간의 자유이다. 자유는 그 속성상 반드시 제약이나 조건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른 것은 다 취하되 선악과만은 손대서는 안 된다는 성경의 말씀이 좋은 일례일지 모른다. 삶의 모든 것이 한계가 없는 것이 없는 데 오직 표현의 자유만이 예외일 수 있겠는가?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허용되는 사회는 무정부 상태이지 민주주의는 아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자유는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적인 것이지만, 자유와 자유의 남용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자유의 남용은 오히려 자유 자체를 저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를 남용하는 자는 대개는 자유를 위하기보다는 자유를 빙자해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자 할 다름이다. 문제의 발언을 놓고 일부 지식인들은 미래 한국을 내다보고 진보적인 사고를 표현했다고 항변하나, 그 같은 표현의 자유는 사실은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자들의 이기적인 표현의 자유일 뿐이지 모두가 마땅히 공유해야 할 표현의 자유는 아닌 것이다.
만일 문제의 당사자가 선지자라면 오히려 구속하는 것이 마땅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말했듯이 악한 세상에서 의인이 살 곳은 감옥 밖에 없게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과연 선지자인가?
누구 못지않게 표현의 자유를 소망하는 사람으로서 정부나 일부 시민단체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해도 크게 달갑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만일 저들이 진정으로 한 지식인의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정부가 갈수록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엊그제 서울대학 총장의 볼멘 불만은 어찌 생각해야 하는가? 보이지 않는 그물로 검찰 전체를 구속하는 것도 진정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함일까?
최병헌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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