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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어느 아침 눈 같이 내린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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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어느 아침 눈 같이 내린 서리

입력
2005.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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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아래에서 자란 나는 다른 곳에서 자란 사람보다 늘 서리를 일찍 보았다. 저녁 라디오에서 “오늘 밤은 기온이 내려가 강원도 산간지방에 서리가 내리는 곳도 있습니다” 하면 그게 바로 우리 동네였다.

서리는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크고, 바람이 적은 날에 잘 내린다. 어떤 날 아침은 눈 뜨고 밖에 나가보면 탈곡을 마친 볏짚에 눈처럼 하얗게 내려 있을 때도 있다. 가을에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봄에도 많이 내린다. 제주도나 전라도 차 밭에 군데군데 대형 송풍기를 설치해 돌리는 것도 서리가 내리지 않도록 땅 가까이의 찬 공기와 공중의 공기를 뒤섞어주기 위해서다.

특히 가을 농작물에게 서리의 피해는 치명적이다. 예전에 북쪽 지방에서는 밭 가에 일부러 연기를 피워 올렸다고 했다. 우리가 가끔 쓰는 말 가운데 ‘추상같은 명령’의 추상이 바로 늦가을의 찬 서리다. 농작물로서는 서리의 힘을 거역할 수가 없다. 고추 밭도 가지 밭도 서리를 맞으면 이내 잎이 시들며 축 처지고 만다.

어린 우리들만 빈들에 하얗게 내린 서리를 보고 온 산의 붉은 단풍 속에 벌써 겨울이 오고 눈이라도 온 듯 신기해하며 그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찍곤 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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