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계 문학에 관한 책을 좀 보다가 새삼 너무하다 싶은 점을 발견했다.
엘리아스 카네티. 불가리아 태생으로 영국에 거주하며 독일어로 작품을 쓴 유대계 작가이다. 1981년 노벨 문학상까지 탄 현대 문학의 거목으로 《현혹》 《군중과 권력》 같은 대표작은 일찌감치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네이버며 구글이며 야후 코리아며 아무리 뒤져 보아도 200자 원고지 2.3~5.7매짜리 전자 백과사전 항목과 극히 전문적인 논문 한두 편, 번역서들에 실린 몇 줄짜리 소개글이 거의 전부였다. 게다가 29쪽에 불과한 한 논문은 한국학술정보㈜라는 회사에 3,520원을 내야 볼 수 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았다. 사진 자료까지 곁들여 A4 용지로 무려 13매까지 되는 분량으로 카네티를 ‘빠삭하게’ 소개하고 있다. 중요 작품 구절을 저자가 직접 읽은 것을 음성 파일로 올렸는가 하면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방송과 국제카네티협회 등도 링크해 놓았다. 미국이나 독일 야후에 들어가 카네티라고 쳤을 때 뜨는 자료의 질과 양은 엄청나다.
한국어 인터넷 ‘지식검색’에 올라오는 자료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문제 작가 지외르지 콘라드(72세) 같은 작가에 이르면 한국어 자료는 아예 없다!
오프라인도 별로 다를 바 없다. 시간과 발품만 많이 들 뿐.
아아, 한국어 자료의 빈약함이여! 정말 너무합니다!
진짜 기가 질리는 얘기는 따로 있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http://www.gutenberg.org). 미국인 마이클 하트가 중심이 돼 꾸려가는 이 사이트는 철학, 문학, 역사 등 인문사회 분야에서 저작권이 소멸된 사후 50년이 지난 작가, 사상가들의 저작을 풀 텍스트로 서비스한다. 물론 공짜다.
당장 플라톤의 《향연》을 구해서 읽고 싶으시다고요? 구텐베르크에 가 보세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랑스어 원본 전체를 구하고 싶다고요? 구텐베르크로 가 보세요.
여기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염기서열 분석까지 2,000여 년 서양 문명의 핵심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어느 미국 대학에서 운영하는 중국 철학 사이트는 노자 《도덕경》 한문 원문과 19세기말 제임스 레게본을 비롯해 모두 12종의 영역본을 한 화면에 올려놓았다!
브리타니카의 시대는 끝났다. 옥스퍼드대, 미시간대, 하버드대, 뉴욕시립도서관 소장 도서 상당 부분을 스캔해 인터넷에 서비스하는 프로젝트도 구글이 이미 시작했다.
큰 일이다. 지식 분야에서 이렇게 가차 없이 밀리면 정말이지 미래가 없다.
더구나 우리 것을 영어로 외국에 알리는 부문으로 가면 사정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Sejong을 쳐 보라. 세종기지, 세종대학, 세종호텔을 제외하고 4~5건 정도 나온다.
어느 대학이든 석사과정 한 학기 콘라드 강좌에, 율곡 강좌에 100만 원 정도만 지원해도 석사 논문 한 편 수준의 한글ㆍ영문 해제쯤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 나와 있는 영문 춘향가 같은 것도 해당 기관이나 학자와 잘 협의해 인터넷에 서비스할 수 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연구자가 부족하고 돈이 없고 풍토가 척박하다고 손 놓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문화부든 교육부든 학술진흥재단이든 하루 빨리 어떤 식으로든 나서야 한다.
이광일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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