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선박으로 코카인 1,200㎏을 아프리카로 밀반입하려던 남미 국제마약조직을 적발했다고 브라질 당국이 발표했다. 규모로 브라질 사상 3번째였다. 그러나 당시 마약을 운반하던 한 한국인이 목숨을 걸고 이 사건을 신고,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다는 사실은 끝내 숨겼다. 한국일보는 이후 국내 모처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철수(49ㆍ가명)씨를 만났다. 당시 그의 항해일지와 수사기록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8월 26일 10만 달러. 구미가 당긴다.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이 곳 수리남에 온 지 8년. 이처럼 큰 돈은 처음이다. 한달 3,000달러로 생활이 힘들던 참이다. 일도 쉽다. 정글에서 생산되는 광석을 아프리카 세네갈까지 실어주기만 하면 된단다. 보수가 너무 많아 이상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야 키만 잡고 있다 오면 그만인데…. 소개해 준 교포 이영희(가명)씨가 고맙다. 항해를 도울 재중동포 2명과 100톤급 운반선 ‘한국(가명)호’도 준비됐다.
9월 1일 드디어 출발. 북위 10도 서경 50도가 목표.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도 바다, 두려울 건 없다.
9월 6일 이씨가 수리남인 1명, 콜롬비아인 2명과 조그만(80톤 정도) 배를 타고 왔다. 접선지에서 기다린 지 이틀 만이다. 다른 사람들의 낌새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분 탓이려니 여겼다.
9월 7일 물건은 광석이 아니라 ‘코카인’이라고 했다. 놀랐지만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쌍발 비행기가 구름 저편에서 보일 때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비행기는 한번에 4, 5개씩 포장된 물건을 7, 8차례 바다로 떨어뜨렸다. 선원들은 보트로 한국호로 옮겼다. 포장이 뜯겨진 물건 안에 30~35㎝ 세로 15~20㎝ 5~6㎝ 정도의 직육면체 모양이 보였다. “코카인”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콜롬비이인의 모습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마약은 곤란하다”고 했다. 객기였을까. “너도 이제 공범이다. 이대로 수리남에 돌아간다고 해도 넌 우리 조직원들에게 살해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시키는 대로 하자.
9월 8일 마약 적재를 돕던 이씨의 배에 엔진 고장이 생겼다. 그 배를 예인해 수리남 근처에 정박시키자 콜롬비아인 조직원 1명이 우리 배로 올라탔다. 그가 세네갈로 우리를 인도할 거란다. 한국호엔 재중동포 2명과 나, 그리고 조직원 1명. 벗어날 방법이 없다. 15~20마일 뒤에서 우리를 쫓아오는 감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9월 X일 며칠이 지났는지. 이대로 세네갈에 가도 살해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교도소에서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 탈출을 해야지…. 재중동포 2명이 탈출에 동참하기로 했다.
9월 16일 폭우다. 천우신조. 엔진에 이상이 있다며 시간을 끈 뒤 항로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육지가 보이고 있다. 조직원인 콜롬비아인은 멀미로 연신 구토를 해댔다. 망망한 대서양. 어디로 가는지는 선장인 나 밖에는 모른다.
9월 17일 따라오던 감시선의 움직임 없었다. 2명의 선원(재중동포)과 함께 셋이서 콜롬비아인을 제압하고 위성전화를 빼앗았다. 이제 살았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9월 19일 북위 10도30분, 서경 34도30분, 남미 해역이었다. 인근의 한 우리 대사관과 연락이 됐다. “엄청난 마약을 싣고 있다”고 신고하고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이젠 기다리면 된다.
9월 27일 한국 대사관의 지시에 따라 브라질 포르탈레사 항구에 도착했다. 악몽 20일. 인터폴 수사관과 브라질 연방경찰 10여명이 승선했다. 코카인 1,200㎏, 시가 3,600만 달러라고 했다. 경찰은 한 건했다며 즐거워 공포탄을 쏘아댔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하지만 난 기운이 없다.
10월 1일 브라질 당국의 조사를 받고 고국으로 인도됐다. 조사를 받았지만 “자유의 몸”으로 풀려 나왔다. 하지만 자유로울 수 없다. 생활 근거지였던 남미로는 보복이 두려워 돌아갈 수 없다. 한국에도 연고가 없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다. 막막하다. 브라질과 조국은 더 이상 나에게 해줄 게 없다고 했다. 또다른 악몽이 시작되고 있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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