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의 아들' 박봉성 신의 품에 잠들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신의 아들' 박봉성 신의 품에 잠들다

입력
2005.10.16 00:00
0 0

‘신의 아들’의 만화가 박봉성씨가 15일 오후4시30분 도봉산 산행 도중 쓰러져 별세했다. 향년 56세.

고인은 ‘오혜성’의 이현세씨, ‘이강토’의 허영만씨와 함께 ‘분노의 카리스마, 최강타’로 한국 만화의 가장 빛나던 시절인 1980~90년대를 이끈 주역이었다.

그는 경남 진해에서 나서 중학교 때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웠고, 건국상고 1학년 때 ‘소년한국일보’ 소속 만화가였던 오명천씨 문하에 들어 그림을 배웠다. 스승이 내준 ‘거리 스케치 1만5,000장’ 숙제를 석 달 만에 해냈을 만큼 그는 성실했고,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25세 때인 74년 ‘떠버리 복서’로 데뷔했으나 그다지 주목 받지는 못했다. 군복무 중 만난 2살 연상의 당시 여군 중위 권복희씨와 양가 반대를 무릅쓰고 막 동거를 시작한 직후였다. 그의 출세작은 ‘20세 재벌’이었다. 이후 ‘20세 거물’ ‘20세 황태자’ 등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70년대 개발시대의 성공신화를 그려냈고, 그 역시 작품처럼 성공한 만화가로 우뚝 섰다.

80년대 초반 그의 ‘봉성 프로덕션’이 출범한다. 자신이 스토리를 짓고, 그림은 문하생들과 공동 작업하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기업형 분업체제를 갖춘 것이다. 대표작 ‘신의 아들’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등이 그 시절 작품들이다. 그는 만화가로는 최초로 세무조사(86년)를 받는 등 경제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만화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현재 봉성 프로덕션에는 약 70여 명의 문하생이 포진해있다. 고인의 작품은 줄잡아 400타이틀에 이르며 권수로는 약 1만 권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9년 부산예술문화대 겸임교수, 한국만화가협회 22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권씨와 2남1녀.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13호 영안실, 발인은 17일 오후3시. 유해는 화장 후 경기 고양시 청아공원 납골당에 안치된다. (02)392-3299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