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이은호 사회부 차장 leeeunho@hk.co.kr
1972년 개교 이래 경제적, 시간적 어려움으로 제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주었던 한국방송통신대가 제2의 변신을 추진 중이다.
오지와 교도소, 군 부대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교육의 사각지대를 ‘지식의 복음지대’로 바꾸는 ‘찾아가는 서비스(Outreach Service)’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런 방송대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조규향(63) 총장을 12일 막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한 방송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_대학가에서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으로 이름나 있는데 평소 학교 운영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신가요.
“지금까지 우리 대학 교육은 공급자 위주였습니다.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은 넘치지만 대학 정원은 한정돼 있어 대학이 굳이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더라도 학교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대학이 학생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대학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강단은 교육 전문가가 지켜야 하지만 대학행정은 행정전문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_방송대 총장으로서 평소 그런 소신을 정력적으로 실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방송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시간이 부족하거나, 돈이 없거나, 또는 나이가 많아서 일반 대학을 다니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그런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총장이 된 후 가장 먼저 인터넷 강의를 도입했습니다.
학생들이 방송시간을 놓치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지난 방송강의를 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추가등록, 재입학 제한도 풀었어요. 방송대는 평생교육기관이란 특성상 현업에 종사하는 학생의 비율이 높아 중도탈락자가 많습니다. 이렇게 학업을 중단했던 학생들이 언제라도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쑥스럽지만 또 하나 자랑을 하자면 학생들이 대면교육 기회의 부족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외국의 개방형 대학에서 보편화해 있는 튜터제도를 시범 도입했습니다.
4년제 대학 석ㆍ박사 과정 재학생 이상인 이들 튜터는 학생들이 집에서 공부하다가 교과내용과 관련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온라인으로 물어오면 24시간 내에 답해주고 있습니다.
시험기간에는 튜터가 자신이 맡은 학생들이 시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별연락도 해줍니다. 아직은 예산문제가 남아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숫자를 충분히 늘릴 생각입니다.”
_사이버대 붐으로 방송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원격교육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경쟁 전략과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이버대는 컴퓨터와 친숙한 세대들의 전유물이지만 우리는 나이든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방송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까닭에 교육 대상이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합니다. 또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도 함께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33년간 축적된 교육 노하우와 탄탄한 교재도 우리의 강점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잘하는 것은 엄정한 학사관리라고 할 수 있어요. 올해 1학기 등록자 수는 18만명이었지만 2학기에는 13만5,000명만이 등록했습니다. 깐깐해서 방송대 다니기 힘들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 평판이 우리 졸업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우리만의 프로그램도 몇 가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 1학기부터 시작되는 ‘과정별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가령 중국어는 물론, 중국의 문화 역사 경제 등에 대해 배우고 싶지만 굳이 학위를 따겠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 같은 것입니다.
매년 우리 학교에는 다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1만5,000명에서 2만명 가량 입학하는데 이들은 사실 학위보다는 배우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마땅한 통로가 없어서 3학년으로 편입하곤 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조 총장의 막냇사위와 막내딸도 있다고 조 총장은 귀띔했다.) 그런 수요를 수용해 비학위 과정을 만들겠다는 것이 취지입니다. 새 과정은 우리 학교 교수가 아니라 외부강사를 데려와서 활용할 수도 있고 강의 자체를 통째로 아웃소싱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학교가 ‘교육 포털’이나 ‘교육 시장’의 역할을 하는 셈이죠. 교육자가 직접 판매망을 구축하기가 힘든 교육 콘텐츠 시장의 특성상 그러한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_방송대가 실시 중인 ‘찾아가는 서비스’의 성공이 원격교육 업계에서 단연 화제라고 들었습니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교육의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소외지역에서 학습프로그램을 맞춤식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2003년 경북 울릉군 거주학생을 위한 시험을 울릉도 현지에서 처음 실시했고 지난해에는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학위과정시험을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 교도소의 경우 첫해에는 여주교도소 수용자 29명을 입학시켰고, 올해는 2차로 전주교도소 재소자 30명을 받아들였어요. 교정시설 내에 초ㆍ중ㆍ고교 과정이 개설돼 있기는 했지만 4년제 대학과정은 없어서 많은 재소자들이 출감할 때까지 대학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데 착안했는데 무척 반응이 좋습니다. 올해는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는 경찰 101경비단원 중 희망자 159명을 법학과에 입학시켰습니다.
청와대 부속청사에 설치된 학습관으로 우리 교수들이 직접 나가 교육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야심차게 추진하는 곳은 군 부대입니다. 군 복무 중 학위를 받을 수 있다면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_최근 정부와 대학 사이의 대립이 심각한데 오랫동안 교육관료와 대학총장을 하신 경험으로 비춰볼 때 어떻습니까.
“서울대가 이야기하는 것도 나름대로 옳다고 봅니다. 대학에도 레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죠. 최고의 학문적 수요를 맞추어야 하는 대학과 우리처럼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는 대학은 예산, 제도, 평가 기준 등 모든 것이 달라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입시문제를 갖고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당장은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잠재력 있는 학생들을 받아서 훌륭하게 키워내야 좋은 대학이 아닌가 합니다. 정부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너무 자주 입시제도를 바꾸면 안 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원회를 만들고 개혁을 한다고 해 왔는데, 교육은 시행 후 7~8년 이상 지나봐야 효과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충분한 기간 실천해 보지도 않고 제도만 자꾸 바꾸는 것은 지양해야합니다.
친정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거 같은데(웃음) 교육정책은 입시제도조차 당해 년도 봄에 발표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3~4년 전에 발표하여 대비하도록 하고 있잖습니까. 정부의 다른 정책 분야와 비교하면 많이 앞서가고 있는 셈이지요.
_이제 본격적인 입시철인데 어떤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방송대는 진정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에게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어요. 단 시간관리를 잘 할 수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주말에 몰아서 공부해야지’ 하는 식의 습관으로는 졸업 못합니다.
일상에서 짬짬이 공부하는 습관이 배어있는 사람이라야 적응할 수 있습니다. 가정을 가진 주부들도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자녀수가 적어서 공부하기가 예전보다 나으리라고 봅니다.
장담컨대 엄마가 공부를 하면 자녀는 따라서 공부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대에 유아방을 갖추고 있어 자녀들을 데려와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있어요.
학비도 국ㆍ공립대의 7분의 1 수준이고, 바쁠 때에는 휴학과 재입학도 쉽게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문을 두드리십시오.”
■ 조규항 항국방송통신대 총장 약력
▦1960년 경남고 졸 ▦64년 서울대 법학과 졸(86년 한양대 행정학 석사) ▦66년 제4회 행정고시 합격, 문교부 사무관 발령 ▦90~93년 교육부 차관 ▦93~96년 국정교과서㈜ 사장 ▦96~98년 부산외국어대 총장 ▦98~2000년 대통령 사회복지수석비서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2000~2002년 서울디지털대 총장 ▦2002년~2004년 아시아원격교육협의회(AAOU) 의장 ▦2002년 9월~현재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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