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검찰총장이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행사를 수용했다. 국가기관 사이의 갈등으로 정치사회적 혼란을 더하는 것을 피하려는 충정에서 어렵게 내린 결정일 것이다. 비록 타협적으로 비칠지라도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헌정 사상 유례없는 지휘권 발동의 정당성을 마련해 준 것은 아니다. 김종빈 총장도 이를 국민의 판단에 맡겼다. 표현은 완곡하지만 검찰 중립을 해칠 위험성을 분명하게 지적, 장관의 정치적 책임을 확인시킨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먼저 인식할 것도 바로 이런 명백한 사리다. 강 교수를 사법 처리해야 옳은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논쟁할 권리가 있지만, 국가 수사기관은 실정법 위반여부를 가릴 책무가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논란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재량껏 고려할 사항일 뿐이고, 구속수사가 필요한지도 검찰과 법원이 법 원칙 등을 두루 고려해 판단할 일이다.
이런 원칙에 비춰 볼 때, 천정배 장관이 불구속수사 원칙을 내세워 지휘권을 행사한 것은 언뜻 획기적이지만 사실은 엉뚱하다. 본인 말대로 불구속원칙 확립을 역사적 소임으로 여겼다면 평소 일반적 지휘감독권을 통해 천명하고 독려할 것이지, 하필이면 정치사회적으로 시끄러운 사건을 골라 국가기관 사이의 갈등까지 보탰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일부 추측처럼 이를 통해 천 장관과 정부가 국보법 폐지 소신과 의지를 과시했다면 그 것도 바른 길이 아니다. 국보법 개폐는 입법절차를 통해 다룰 정치적 사안이다. 결국 이번 사태를 둘러싼 혼돈은 사회와 정치가 함께 부추긴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조직이 진중하게 대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검찰이 앞으로도 의연하게 본분을 다할 것을 기대하려면, 정치와 사회가 먼저 분별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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