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댄스다. 경쾌한 라틴 댄스다. 가정은 그 무대다. 그래야 한다, 하는데…. 소설가 이명랑씨가 장편 ‘슈거 푸시’에서 자이브 리듬처럼 경쾌한 문체로 전하는 말이다.
소설은 27살 주부인 ‘나’가 견뎌 온 유년의 가정과 결혼 이후의 생활 이야기다. ‘나’가 경험한 결혼 전의 가정은 부성의 가부장적 공간이 아닌, 모권이 지배하는 ‘여왕벌의 콜로니(colony)’다. ‘나’는 엄마에게서 엉덩이의 발육은 음흉함의 증거이고, 타이트한 드레스는 천한 영혼의 상징이라 배우며(학대 당하며) 자란다.
로열젤리를 독점하며 제2의 여왕벌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지배, 일벌 집단을 철저히 통제하는 ‘퀸 컨트롤’(queen control)의 세계. ‘나’는 그 가정에서 ‘탈출’해 한 남자(그는 하사관이다)와 결혼하지만 그는 가정을 전부로 아는 가부장적 남자다. 이제 ‘나’는 아랫배가 엉덩이처럼 “미련스럽게” 튀어나온 67㎏의 일벌 같은 존재일 뿐이다.
‘나’에게 매주 금요일의 백화점 교양 댄스교실은 유년부터 꿈꿔 온 일상 탈주의 세계다. 거기서 ‘나’는 “최소한 필요한 스텝은 기억하고 무대에 나가”야 하며 “(실수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은 초보자일 때 잠시뿐”이며 “어설픈 프로는 역겹다”는 것을 배운다.(54~65쪽)
‘슈거 푸시’는 춤 용어라고 한다. 상대와 손바닥을 맞댄 채 팔을 뻗어 서로 멀어졌다가 팔을 가슴 옆으로 벌려 두 몸을 하나로 합치는 동작. “슈거 푸시. 왜 슈거 푸시일까? 멀어짐, 그 뒤의 사탕처럼 달콤한 만남?”(90쪽)
소설은 춤(삶)의 베이직에 충실해짐으로써 ‘진짜 프로’가 되겠다는 ‘나’의 충동과 갈등과 상처와 꿈을, 경쾌하지만 서글프게 그린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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