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는 글씨든 못 쓰는 글씨든 오랜 시간 자기 글씨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엔 필체가 매우 활달해진다. 글씨를 매우 잘 쓰는 중고등학생보다는 못 쓰지만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씨를 써 온 어른들의 글씨가 더 활달해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 컴퓨터 글을 쓰지만 예전에 종이 위에 글을 쓸 때, 어른들은 글씨만 봐도 그 사람의 필력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옛날의 칼잡이들도 서로 대결을 해봐야 그의 솜씨를 아는 게 아니라 칼집에서 칼을 꺼내 그 칼을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고수와 하수를 구분했다는 말처럼 글씨와 필력간의 관계 역시 그렇겠다 싶었다.
어진 사람은 어질게 글씨를 쓰고, 성격이 반듯한 사람은 빠르게 흘려 써도 어딘지 모르게 그의 글씨가 반듯해 보인다. 우리 집안도 형제들의 글씨보다는 아버지의 글씨가 더 활달하며, 그 중에 내 글씨가 가장 못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글씨는 애초 왼손잡이가 어린 시절 매를 맞아가며 억지로 배운 오른손 글씨여서 마치 쓰기 싫은 반성문 쓰듯 삐뚤빼뚤 반항기가 넘친다. 아내는 젊은 시절에 자신이 받았던 내 연애 편지조차도 고금에 그런 필법이 없는 ‘난폭체’였다고 말한다.
소설가 이순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